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서휘 Oct 09. 2024

연재소설_16화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때렸어요. 복부 한 대, 멱살 잡혔고, 현관문에 머리도 박았어요. 그리고 씩씩대면서 집을 나갔어요”


민준은 겪은 일과 영이가 지어낸 말을 교묘하게 섞어 로봇처럼 반복한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간호사, 의사, 상담사, 무슨 전문가까지 올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해대는 통에 넌더리가 날 정도다.


검사도 끝없이 이어진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혹시 모른다며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만든다. 질질 끌려다니는 와중에 영이의 전화번호를 적은 포스트잇을 잃어버렸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영이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저녁 식사까지 마친 후에야 평화가 찾아온다. 민준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닌텐도를 켠다. 며칠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반해신 경감이 짐을 싸라고 했을 때 같이 넣은 것이다. 


병실 텔레비전에서는 트로트 방송만 주구장창 나온다. 닌텐도가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사실 게임에서라도 영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게임에 접속한다. 이제 민준의 집도 제법 집답다. 저가이긴 해도 책상, 냉장고, 싱크대도 있고 캐릭터가 누울 수 있는 싱글 침대도 있다. 볕이 겨우 드는 들창에는 블라인드도 달아놨다. 


이게 진짜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영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잠시 꿔 본다. 영이의 집에 비하면 한참 후지지만 그래도 제 손으로 마련한 집이다.


닌텐도 속 민준의 책상 위에 숫자 1이 적힌 말풍선이 떠 있다. 그곳을 터치하자 방명록이 켜진다.     


[나도]     


작성자가 ‘독립하고싶어영’이다. 영이의 아이디다. 다섯 시간 전에 남겼다. 민준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계처럼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다. 뭐가 ‘나도’라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틀어막는다. 


영이가 결석했을 때 민준이 남긴 글에 대한 답장이다. 그때 ‘영이야, 어디 갔어. 보고 싶어’라고 남겼다. 민준은 이불을 팡팡 발로 찬다. 텔레비전을 보던 병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꾹 참고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밤 아홉 시가 넘었다. 영이가 성경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민준은 게임 속 ‘오늘의 할 일’을 다 마쳤지만 잠시 기다려 본다. 그러나 영이는 접속하지 않는다.     


민준은 사흘 만에 퇴원한다.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보호자로 온 작은아버지는 병원비를 정산할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가 병원을 나서자마자 민준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어디 가신 지 아니?”

“말없이 나가셨어요. 그러곤 안 돌아오셨구요.”


작은아버지를 속이려니 가벼운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자신이 죽였다고 밝히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섰다.


“또 사냥하러 숲에 갔나…….”

작은아버지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주차장으로 향한다. 작은아버지가 리모컨을 작동하자 어디선가 삐빅 소리가 난다. 한구석에 주차된 날렵한 빨간 스포츠카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인다. 못 본 사이에 차를 바꾼 모양이다. 민준이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타자 작은아버지가 묻는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어떻니?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말이다.”

“안 오시면 어떻게 해요?”


민준이 묻자 작은아버지가 민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땐 내가 후견인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남 부럽지 않게 돌봐주마.”


민준은 차창 틀에 양팔을 올리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작은아버지의 집에서 지내면 생활은 편해질 것이다. 일단 매일 무얼 먹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름에 선크림이 떨어질 일도 없을 거고, 장마철에 비가 들어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에는 수도가 얼지 않을까, 보일러 요금이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혹시 작은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면 전학 가야 해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니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작은아버지가 묻는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민준은 용추빌라에 들어선다. 아버지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한 채 현관문을 연다. 현관에 아버지의 갈색 구두가 놓인 걸 보고 흠칫 놀란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걷는다. 


멀찍이 떨어져서 안방을 기웃댄다. 불 꺼진 안방이 텅 비어있다. 문지방에는 핏자국이 굳어 있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모든 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제야 잊고 있던 그날의 광경이 우수수 떠오른다.


공포에 물든 지영의 얼굴, 손에 묻은 피, 한기에 떨리던 몸, 복부를 강타한 통증, 영이에게 달려들던 아버지, 재로 뒤덮인 영이……


벌어졌던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지고 아직도 꿈속인 듯 현실감이 없다. 잠에서 깨면 술에 취한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켜둔 채 자고 있을 것만 같다.


민준은 눈을 감고 심호흡한다. 잠시 후 눈을 뜬다. 안방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텔레비전이 꺼진 집 안이 고요하다. 이제 이 적요에 익숙해져야 한다.


민준은 자기 방문을 연다. 한편으로 밀려 있는 매트리스가 눈에 들어온다. 비어있는 방바닥에 영이가 앉아 앨범을 봤었다. 그 생각을 하자 미친 듯이 영이가 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영이는 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갔다가 영이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민준은 뒤돌아선다. 현관문을 부서질 것처럼 닫고 달리기 시작한다. 절정에 달한 더위도 민준을 막을 수 없다. 와다다다 오르막길을 달려 언덕마루를 지난다. 빌라촌을 벗어나 금세 검고 웅장한 철문 앞에 도착한다. 문 위에 설치된 CCTV를 향해 양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폴짝폴짝 뛴다. 


‘영이야! 여기를 봐!’


몇 분을 그렇게 뛰었을까. 땀에 흠뻑 젖은 채 뜨거운 입김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때, 철문이 지잉— 하며 열리고 영이가 계단을 내려온다. 민준을 보자마자 달려온다. 민준은 영이를 와락 안는다. 영이도 말없이 안긴다.


둘은 손을 잡고 걸어가 길가 갓돌에 나란히 앉는다. 민준은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리라 마음먹는다.


“그날 그렇게 집에 가서 어떻게 됐어? 그 여자한테 혼나지 않았어?”

“혼나기는. 너희 아버지 전도하러 갔다고 했지.”


민준은 웃음이 터진다. 영이는 임기응변이 굉장히 뛰어나다.


“같이 온 여자는 뭐라 안 해?”

“입단속 시켜놨지.


아마도 영이는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나 입원한 동안 학교에는 별일 없었고?”

“있었지.”

“뭐? 무슨 일!”


민준이 화들짝 놀라자 영이가 풉, 하고 웃는다.


“성웅이랑 한결이가 엄청나게 걱정하더라. 네가 조그만 벌레만 봐도 화들짝 놀란다고 하면서 기가 약한 거 같다고 보약 지어 먹이면 좋겠다고 말했어.”


“아, 그래…….”

기가 차면서도 동시에 별일 없는 것 같아 안도한다.


“또 있어.”

이번에는 영이가 심각한 얼굴을 한다. 민준은 다시 긴장한다.


“내가 너무 심심했어.”

“어? 아…… 심심했어?”

“응. 너는?”

“나도.”

“나 보고 싶었지?”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영이가 귀를 갖다 댄다. 민준은 조그맣게 말한다.


“보고 싶었다고.”

“뭐라고?”

“보고 싶었다고!”

“야! 얼굴은 왜 빨개지냐. 아, 한민준. 놀려먹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그러면서 영이가 배를 잡고 깔깔댄다. 민준은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않고 영이를 바라본다. 영이의 환한 미소에 기분이 밝아진다.


한참을 웃은 영이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네가 꿈에 나오진 않더라.”

“응?”

“네가 방명록에 남겼잖아. ‘잘자, 내 꿈 꿔’”


민준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영이가 또다시 배를 잡고 웃는다. 이번에는 민준도 같이 웃는다.


영이의 집 앞으로 온다. 담장 너머로 삐져나온 소나무가 비를 한껏 맞아서 그런지 더욱 푸르게 보인다. 내일 교회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는 영이를 집에 들여보낸다.


민준은 집으로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간판이 꺼진 지영 해장국을 발견한다. 거리를 두고 가게 안쪽을 기웃거려 본다. 음료 냉장고의 불빛만이 어둑한 실내를 창백하게 밝힌다.


지영은 어떻게 됐을까. 민준의 집에서 도망친 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 정도 흡혈된 걸로 뱀파이어가 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민준은 아랫입술을 깨문다. 다 제 탓이다. 자신이 그 가게에 정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지영이 아버지의 타겟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다.


민준은 고개를 젓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후회와 자책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지영이 민준의 끼니를 때우게 해주었듯, 이젠 민준이 지영의 구멍 난 가슴을 때워줄 차례다. 지영을 다시 만나면 모든 걸 다 이야기하리라.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면, 민준에게 충분히 있다. 민준은 지영 해장국의 모습을 붉게 빛나는 눈동자에 담는다. 그리고 용추빌라로 향한다.     


월요일 아침. 민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등교한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성웅이 달려와 와락 껴안는다. 더워질수록 성웅의 땀 냄새가 지독해지지만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견딜 만하다.


“호강 탐정단원 한민준! 복귀를 축하한다.”

“우리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야.”


한결이 안경을 추어올리며 말한다. 민준은 일단 가방을 내려놓는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심각한 얼굴로 둘에게 속삭인다.


“큰일 났어. 얘들아.”


성웅과 한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인다.


“뉴스에서 봤는데 뱀파이어는 어린애들을 좋아한대. 특히 성웅이 너처럼 토실토실한 애들…….”


“뭐?”

성웅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땀을 많이 흘리잖아. 그치?”

“응…….”

“땀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거래.”


“헉! 어떻게 하지?”

성웅이 제 팔뚝에 코를 묻고 킁킁댄다. 준비한 거짓말이 잘 먹힌다. 


“맞아. 나도 그 이야기 들었어.”

민준을 예의주시하던 영이가 불쑥 끼어든다.


“우리 나이대가 가장 맛있을 때래. 닭도 어린 게 맛있다잖아.”

“뱀파이어의 존재를 들추려고 하지만 않으면 먼저 공격은 안 한다더라.”


이어서 민준이 말을 보태자 성웅과 한결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그러고는 자리로 돌아가 겁에 질린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영이가 제법이라는 듯 묘한 미소를 보낸다. 민준은 윙크로 화답한다.


민준은 자리에 앉아 교실을 휘 둘러본다. 허공을 노려보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태영이 보인다. 뱀파이어를 잡아 죽인다니, 뭐니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런 악감정이 일지 않는다. 저 애도 고작 중학교 1학년생이라고 생각하니 되려 불쌍하다.


시끄럽게 깔깔대는 무리가 있어 그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과장된 몸짓으로 장난을 치는 애가 있다. 전학 온 첫날, 혼자 앉아 있던 아이 중 하나다. 


그때 드리워져 있던 어두운 기운은 흔적도 없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좀 다른 건가? 고개를 갸웃하던 민준은 자신이 중학교는 처음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표지: Copilot로 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