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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Mar 18. 2022

모바일 청첩장만 보낸 친구에게



최근 재밌게 본 연애 리얼리티 예능이 하나 있다.

러브이즈블라인드(Love is Blind) 시즌 2. 얼굴을 안 보고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는가를 다룬 실험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취지 보고 미쳤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쩌면 얼굴 보고 소통을 안 한 지 꽤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얼굴 보지 않고 사람을 알게 되는 세상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캡처



물론 프로그램의 취지는 사랑에 눈이 멀었는가 혹은 안 멀었는가를 구별하려고 만들었을 것이다.

충분히 흥미로운 취지이다.

출연진들이 결혼에 골인을 했든, 안 했든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심장을 아주 쫄깃하게 하니까.



출연진들은 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아간다. /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캡처



그런데 난 자꾸 SNS가 활발해진 이 시점, 얼굴 보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건 충분히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미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SNS 속 꾸며낸 글과 사진들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팔로워하고 소통하고 있다. 이미 그러고 있다. 그러한 일에 너무 익숙해져있다.


'띵동 모바일 청첩장이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아도 놀라지 않는다. 약 5년 전에 받았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그땐 미친 사람이라고 욕을 하고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제는 덤덤하다.



얼굴이 나오지 않아도 전화 속 생생한 표현과 묘사를 통해 그들의 관계에 빠져든다 / 피식대학 유튜브 캡처



최근 개그 콘텐츠 1위를 달리고 있는 피식대학에서 전화통화로 연애 예능 시트콤 콘텐츠를 선보였다.

남녀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되, 그들의 인스타그램과 목소리는 마음껏 공개했다. 목소리를 통해 구독자들은 남녀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그들이 함께할 미래를 꿈꾼다.

희한하다. 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감성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이.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야 한다면 하다 못해 음성 메시지라도 남겨주자. 음성을 통해 내가 진짜 초대받았는지, 아니면 가짜 초대받았는지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목소리 떨림의 정도와 크기 등을 통해 진심을 구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할 것 아닌가.


정말 랜덤으로 보냈다면 '대충,' '그냥,' '심심해서,' '머릿수 채우려고'했던 느낌들이 목소리에서 묻어 나왔을 것이다.

정말 와주었으면 했다면 '너무,' '와주면 기쁠 것 같아,' '시간이 되려나?'와 같은 배려와 감정이 묻어나올 테니까.



약혼을 약속한 남녀가 서로에게 실물을 공개하기 전,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 /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캡처



어쩔 수 없이 모바일 청첩장만 보냈고 결혼식에 왔다면 후에, 식이 다 끝나고 목소리로 꼭 보답하자.

생각보다 인간은 단순해서 통화 한 번이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만약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고 결혼식에도 갔으며 끝내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서로 관계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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