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죽음을 미리 연습한다
오늘, 죽음을 미리 연습한다
떠남을 설계한 그날부터, 삶은 놀라울 만큼 선명해졌다.
아내가 암 판정을 받았던 건 2015년 초봄이었다. 이름 석 자는 낯익었지만,
그 단어가 우리 식탁 위에 내려앉던 순간의 공기는 낯설었다. 의사는 차분했고, 우리는 더 차분한 척했다.
“초기여서 다행입니다.”라는 말이 희망처럼 들리다가도,
‘수술’과 ‘항암’이라는 두 단어가 마음속에서 쿵쿵 울렸다. 우리는 잠깐 용감해졌고, 또 오래 두려웠다.
아내는 수술이 두려워 맥반석 찜질방에 다니며 자연치유를 시도했다.
“몸이 알아서 회복될 거야”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밤마다 돌아누울 때 스치는 한숨의 길이는 길어졌다. 결국 수술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
그러나 항암치료가 여덟 번 필요하다는 말이 뒤따랐다.
항암 후 열흘, 우리의 밤은 길었다.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시간은 사용설명서 없는 기계처럼 우리를 난감하게 했다. ‘지켜본다’는 말은 생각보다 무력한 동사다.
네 번을 버티고, 우리는 중단했다. 무릎과 엉덩이가 비명을 질렀다.
고관절 무혈성괴사증이 덧씌워진 몸으로, 아내는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다.
인간이 한 사람의 고통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그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적은 조용히 일했다. 아내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았고, 오히려 천천히 호전되었다.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어 나오던 그날, 봄볕이 밝아 보였던 이유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내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원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던 밤,
나는 아들과 딸에게 말했다. “나는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거부할 생각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면 진통제를 달라고 말하겠다.” 아이들은 펄쩍 뛰었다.
“아버지, 왜 벌써부터 그런 말을 해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아갈 마지막 시간을 내 방식으로 쓰고 싶다.” 그 말은 완강함이 아니라 겁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겁을 내 언어로 붙잡아 두고 싶었다. 생전에 유언장에 분명히 적겠다고,
아이들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그 무렵, 나는 ‘삶과 죽음’을 같이 생각했다. 비행기가 추락해도 살 사람은 살고,
접시 물에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식의 표현을 떠올리며, 운명과 우연의 경계를 가늠해 보았다.
죽음은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았지만, 그날만큼은 내 앉은 자리로 걸어 들어오는 그림자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어쩌면 그 질문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다. 몇 해 전 중학교 동창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을 때,
장례식장의 공기는 알 수 없는 허망으로 가득했다.
남은 사람들의 눈빛 속엔 “이렇게 떠나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
나는 검은 띠 두른 네모난 틀 안에 갇혀 절을 받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조문객의 줄, 낯선 얼굴, 흐릿한 위로의 문장들. 장례식은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행사이자,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자리다. 그 뜻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친구, 거래처의 직원들이 의무로 찾아와 숙제를 제출하듯
절하고 돌아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이상하게 비어졌다.
내 마지막 인사는 내 삶을 함께 엮어 온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나누고 싶었다.
슬픔보다 고마움이 큰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생전 장례식’을 떠올렸다. 아직 정신이 또렷할 때,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초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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