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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Mar 06. 2016

#30.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너에게 편안함을 선물할게


예로부터 신발을 선물하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 신을 신고 연인이 멀리 도망가버린다는 이야기다. 연애 초기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연애를 이어가는 이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 속설도 신경쓰이기 나름이다.


내 아버지는 구두매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덕분에 난 구두를 구매하는 데 돈을 쓴 적이 없다. 매장에 예쁜 구두가 들어올 때 마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 구두를 주셨다. 더운 날엔 샌들, 봄 가을엔 구두를, 겨울에는 부츠도 주셨다. 구두 가게 딸이 누릴 수 있는 쏠쏠한 특권이었다.


매번 아버지에게서 구두를 가져오는 바람에 그는 나에게 구두를 선물할 일이 없었다. 그저 그는 새 구두를 신은 나와 함께 걸어줬다.


나는 키가 작다. 이 때문에 내 신발장에 굽이 낮은 플랫슈즈는 없다. 나의 20대는 7센티 이상의 높은 하이힐이 함께 했다. 연애를 하는 동안은 더더욱 그랬다. 높은 구두는 나를 당당하게 해줬다. 너무 오랜 기간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서 발은 망가져 있지만 그래도 높은 굽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그가 처음으로 선물한 것은 운동화였다. 매번 불편하게 걸었던 내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 원래 높은 굽 좋아해. 운동화 신으면 키가 작아보이잖아."


"괜찮아. 난 키 작은 여자가 좋아. 귀여워."


그렇게 그는 나에게 예쁜 핑크색 운동화를 선물했다. 평소 운동화를 잘 신지 않는 나라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됐다.


그래도 그의 정성을 봐서, 그와 함께 데이트하는 날엔 그 운동화를 신었다. 발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찍는 사진마다 다리가 절반은 더 짧게 나오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그 편안함때문에 금세 잊었다.


"신발 선물하면 도망간다는데 왜 신발을 선물했어?"


"도망가라고 준게 아니라 편안하라고 준거야."


그렇다. 그는 나에게 편안함을 선물했다. 오히려 난 그 운동화를 신으며 도망은 커녕 그에게 더 다가갔다.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속설은 이미 우리에겐 해당이 안 됐다.


이후 나도 그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우리의 집에는 커플 운동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가 나에게 첫 선물로 준 운동화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업무상 높은 굽의 구두를 자주 신는다. 하지만 휴식을 취할 때, 조금은 발이 아플 때, 운동화를 신으며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그가 만들어줬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운동화를 신은 나를 보며 "귀엽다. 맨날 그것만 신어"라며 기분 좋은 속삭임을 해준다.


그의 첫 선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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