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의미

by 청명

나에게 운동이란 습관이자 일상이다. 누군가 운동을 주 몇 회 하냐고 묻는다면, 주 6~7회를 한다고 대답하며, 이것도 줄인 것이라고 말한다(진짜 미쳤을 땐 하루에 두 번씩 했다). 만약 나의 일상에 평소와 다른 일정이 생기게 된다면, 난 운동이 가능한 시간을 제일 먼저 고려하는 편이다. 나의 몸은 헬창에 어울리지 않지만 정신 상태는 아마도 헬창인것 같다. 헬창의 정신을 가지다 보니 종종 내가 운동에 목을 매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왜 그렇게 운동에 집착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삶에 대한 사유로 인해 느끼는 심오함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한다고 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질문은 상당히 오랜 시간 나의 마음에 불편한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아마도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군대에서 헬스를 처음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 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놓지는 않았다. 돌아보니 난 운동에 미친 시기가 세 번 있는데, 군대 전역 후 첫 PT를 받았을 때, 20대 중후반 두 번째 PT를 받았을 때, 그리고 30대인 지금이다. 처음에는 군대에서 늘 운동을 했기에 전역 후에도 관성처럼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리고 그 헬스장에서 만난 트레이너와 친해지며 자연스레 PT를 받게 되었고, 좋아지는 몸을 보며 점점 더 집착했던 것 같다. 이후 유럽여행을 가며 자연스럽게 운동과 멀어지게 되었고 한동안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중반 즈음 만났던 여자친구에게 환승 이별을 당했고, 난 환승의 원인을 나의 신체적 매력으로 느꼈기에 PT를 끊었다. 마지막인 지금은 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일 먼저 30대가 되면서 고혈압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아 관리의 필요성을 느껴 주 3회 정도 헬스와 러닝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내 인생에서 제일 길게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20대 중반처럼 이별의 원인을 나의 신체적 매력으로 돌리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는 빈자리를 운동으로 채웠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게 금요일 밤에 이별하고 토요일 아침이 되자, 늘 데이트로 인해 비워둔 시간이 공허함으로 가득 찼고 난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돌아보니, 다시 운동에 대한 집착의 시작은 공허함인 것 같다. 실제로 운동을 하는 시간은 잡념이나 고민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점차 운동은 다시 나의 일상이 되었고, 하루라도 운동을 쉬면 불안해지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럼 그 불안 속에 숨은 의미들은 무엇일까? 운동을 통해 얻은 지금의 몸으로 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변화된 것은 무엇일까? 일단 건강 목적은 어느 정도 이뤘다. 혈압약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으며, 이전보다 체력 수준도 좋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 남자들의 시선은 힘에 대한 집착을 만든다. 남자라면 알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는 사람보다 내가 더 무겁게 들었을 때 느끼는 그 우월감을, 비슷한 맥락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 나를 자주 괴롭히던 친구가 운동 후 커진 나의 몸을 보고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난 그때 우월감과 쾌감을 느꼈다. 이런 요소들이 더더욱 힘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힘에 대한 집착을 반대로 말하면 나의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고 보상하려는 마음이다. 이렇게 보면 힘에 대한 집착이 별로 좋지 않게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우월감은 나의 자존감을 만들어주기에 적당한 수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난 힘과 연약함 사이에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공허함을 매우는 수단으로써 운동이다. 최근 다시 운동을 시작한 원인은 공허함 때문이 확실하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공허함을 회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며, 운동으로 공허함을 피한다 하더라도 그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공허함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이 구조에서 난 공허함을 통제할 수 없으며, 공허함을 피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내게 찾아옴을 느꼈기에, 더 이상 공허의 회피 수단으로 운동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느끼는 불안은 마주하게 되는 공허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잃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마 여기에는 힘에 대한 집착이 일정 부분 속해 있는 것 같다. 이 공허의 구조는 오히려 운동을 환기의 수단으로 변화시켰다. 아무리 운동을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공허는 더욱더 심오한 질문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무의미와 죽음인데, 인생이 이토록 공허하고 무의미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럼 난 왜 살아가야 하지?라는 질문들은 점차 날 더 깊은 심연으로 데려갔다. 심연은 끝을 볼 수 없는 무의미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무의미에 심취해있다 보면 세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내가 있다. 내가 경험하는 무의미함은 타인이 결코 해소해 줄 수 없기에 난 더 깊은 고독을 느꼈고,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이때 운동은 나름 환기의 수단이 되었다. 혼자 심오한 질문에 빠져 있다가도 헬스장에 나가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힘에 대한 집착을 느끼다 보면 보잘것없다고 느껴진 세상의 가치에 다시 관심이 가곤 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죽음 앞에서 돈은 부질없다는 마음에, 돈에 대한 집착 또한 부질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는 살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소한의 돈에 대한 집착은 필요하다. 운동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운동복에 대한 욕구를 불러왔고 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난 돈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힘에 대한 집착과 환기 수단으로써 운동이 양쪽에서 날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 번째는 수용이다. 백수가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진다. 회사원과 달리 식단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없고, 무엇보다 운동할 시간이 많다. 자연스럽게 또래들보다는 좋은 몸을 갖게 되며, 이는 관계에서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닌다. 앞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다고 말했듯,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운동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경계심을 허물기도 한다. 또한 취미로 운동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타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는 힘에 대한 집착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독의 경험은 난 결국 관계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운동은 관계를 맺는데 이점을 준다. 마찬가지로 헬스장에 꾸준히 나가며 친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관계의 발전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는 고독으로부터 도망친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지난 글들을 통해 난 고독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또다시 고독을 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것은 고독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른다. 난 고독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집착. 그 집착이 고독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관계를 찾게 만들지도, 이 지점에서 확실한 것은 난 지금 타인에게 나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어 하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인정은 무의미로 가득한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이기에, 운동은 무의미에 저항하는 수단이기도 한 것 같다.

돌아보니 크게 세 가지 요소인 것 같다. 힘, 공허, 관계. 무엇이 가장 크고 작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가 얽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일단 난 지금 운동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앞으로 직장을 얻어 운동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상상하면 무언가 잃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이 잃는 느낌은 힘에 대한 집착이 생각보다 크다는 의미지 않을까 싶다. 이것 말고도 내가 인식하지 못했거나 애써 무시하는 요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인식한 것들 사이에서 균형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은 약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고, 그 약함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내가 가진 약함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생겨난다. 운동에 집착한 만큼 나의 약함에 대해서는 크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 모른다. 약함에서 내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이렇게 새로운 물음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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