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가볍게 들었다가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 힘들었던 책. 한강의 소년이 온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무슨 농성 같기도 하고 대모 같기도 한데 조금 지나치게 잔인한 풍경이 한 장 한 장 넘겨질 때마다
머리는 점점 아득해져만 갔다.
마치 초보 운전인 내가 길도 모르면서 무작정 직진만 하는 것처럼.
이 책의 모티브이자 책의 서두를 여는 동호라는 인물도, 서서히 이 책에 빠져들게 한
검은 숲의 주인공인 동호의 친구도 책의 중간쯤에 가서야 친근해졌다.
이는 내가 정말 이 책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한강이라는 이름만 보고 구입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지만 한강이라는 작가를 내가 엄청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매스컴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맨 부커상을 통해 알게 되었고 채식주의자 딱 한 권을 읽었을 뿐이고
이마저도.. 두껍지도 않은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읽는 내내 대체 이 작가는 뭐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그런데 왜 나는 한강 이 두 글자만 보고 이 책을 산 걸까? 나 자체도 의문이다.
책을 집어 들어 저 추천사만 읽어봤어도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서두를 흘려보내진 않았을 텐데.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 추천사를 보며 서두를 다시 한번 읽어보려다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만두었다.
이 책은 5.18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굉장히 사실적이고 그래서 너무 잔인하고 슬프다.
흔히들 검은 머리 짐승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간접적으로나마 정말 인간이란 존재가
인간성을 상실했을 때 어디까지 인간답지 못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뼈저리게 느껴진 걸까.
문단 속 살아남은 자의, 살아남은 여자의 증언을. 여성성을 잃어버리고 존엄성을 상실해버린 채
살아남은 이들은 진짜 살아남은 것일까. 불행히도 죽지 못한 것일까.
출처를 모르겠지만 어떤 전쟁에서는 어딘가를 점령하면 남자는 모조리 죽이고
여자는 모조리 강간했다고 한다. 강간을 하지 않는 병사는 남자도 아니라며 강간할 것을
강요했다고도 한다. 잔인하다. 정말 너무나도 치가 떨리고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을 만큼 증오스럽다.
그런데 이런 모든 감정을 앞서 의문이 든다. 왜? 대체 왜?
에필로그.
작가는 이 책을 쓰며, 아니 그 이전에 쓸 준비를 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저 읽기만 하는 나도 몇 번 숨을 고르고, 눈을 길게 감았다가 다시 뜨고, 깊은 한숨을 정말 몇 번이고
내쉬었는데 작가는... 정말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한다.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읽는 내내 후회했고 생각날 때마다 후회하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내려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애도를 표한다.
너무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하여, 영혼이 빠져나간 몸조차 아무렇게나 버려진 그들에 대하여.
아직도 그 아픔이 너무 생생하여 어쩌면 어딘가에서 서로에게 닿지도 못한 채 둥둥 떠다닐 당신들에 대하여.
한강의 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