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Sep 05. 2020

승진을 했고 실장이 되었습니다.

2020.9.1.

드디어 승진을 했다.

지방행정서기에서 지방행정주사보가 된 것이다.


그렇게도 고대한 일인데 막상 닥치니 기분이 묘했다.

모두가 축하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몇 달 늦게 승진한 거 아무것도 아니니

앞으로 잘하면 된다고 격려했지만 막상 나는 발령 공문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왜냐면..


너무 바빴다. 사실 근무평가 순위가 나오고 인사발령 예고문이 떴을 때부터

순위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승진은 거진 확정이었고, 승진을 하면 다른 근무지로 발령 날것도

99% 확실하기에 마음이 갑자기 너무 분주해졌다. 완벽하게 모든 걸 마무리짓고 떠났던 나의 전 근무지의

전임자만큼은 못해도 최소한 이것도 저것도 안돼서 후임자에게 멘붕을 선사하는 전임자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아팠기 때문이다.

입원 준비까지 싹 해서 응급실로 오신 친정엄마가 찍은 사진

승진 발령이 난 다음날 난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그다음 날까지.

승진 발령이 나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심란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계속해서 밤늦게까지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더니 결국 일어나지를 못한 것이다.


정말 두려웠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모든 것을 게워낼 듯 속이 안 좋았다. 남편이 119를 불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으로 무장한 구급대원들이 나를 들어 옮겼다. 다행히 열이 없어서

바로 입장. 원인을 알아보자고 생전 처음 MRI도 찍어보고, 소변검사도 하고 심전도도 했다.


그런데 특별한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비인후과로 갔다.

모든 증상으로 미뤄 보았을 때 메르니에 증후군인데, 청력손실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기는 무리고 상비약을 줄 테니 증상이 심하면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꼬박 이틀을 병가로 보냈더니 마무리할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 했다. 할 수 있는 대로 서랍을 다 비웠고 할 수 있는 만큼 9월로 넘어가는

8월의 일들을 처리했다. 그렇게 8급 마지막 근무지를 떠났다.


나의 새 근무지는 전교생이 40명도 안되고, 전 직원이 30명도 안 되는 아주 시골의 초등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진짜 어쩌다 실장이 되었다. 행정실장.

이제 진짜 7급이라는 기쁨도 잠시 실장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새 학교로 출근하기 전날 새 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육아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데 교장선생님이 꼬박꼬박 실장님이라고 하셔서 정말 통화하는 내내 온몸이 배배 꼬였다.

첫  출근 날에는 행정실에 들어섰는데 내 자리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쭈뼛쭈뼛 거리며 들어가서

앉았는데 정말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행정실에는 나, 사무운영 주사(6급), 시설관리 주사보(7급) 주사님이 있다. 두 분 다 50대시고 남자분이다.


이거 참 얼마나 우습고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체계가 그렇고 직렬이 그런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경력이 나보다 한참 위인 분들을 두고 이제 갓 7급 된 내가 실장이라고 앉아있으니. 게다가 늘 학교에서는

막내일만 하다 보니 업무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실장이라니. 정말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이미 닥친 현실이다.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날부터는 자연스럽게 내 자리에 앉았고 실장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으니 한결 날 부르는 실장이라는 호칭이 편안해졌다.


어쩌다 실장이 되었지만,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실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