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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29. 2020

추가경정예산을 아십니까?

추경

학교운영위원회 날짜가 정해지고, 위원들 참석여부도 어느 정도 정해지고

이제 가장 중요한 예산을 건드릴 시기가 왔다.

네이버에 학교운영위원회를 검색하니 이렇게 나온다. 꽤나 맞는 정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껏 예산서를 제대로 볼일이 없었다.

나는 주로 인건비를 담당했기 때문에 연초에 본예산 세울 때 대략적으로 필요한 예산을 세우고

추경할 때 조정하면 끝이었다. 물론 인건비 추경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건비가 예산들 중에

가장 자잘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며, 변동사항도 매우 많아서 맞추기가 가장 어려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만원을 삼천 원, 오천 원, 이천 원에 나눠 쓰는 건 수월해도 똑같은 만원을

본봉 삼천이백칠십 원 4대 보험 이천칠백이십 원 초과근무 삼천 원 등등 쪼개 쓰는 건 머리가 아프니까 말이다.


실장이 된 이후로 가장 달라진 나의 일상은 예산서를 수시로, 아주 수시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고민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사실 이렇게 고민할 일은 아니다.

돈을 쓴다는 것이. 학교 예산이라는 게 무턱대고 엄청난 돈을 배정받는다는 것이 아닌 학생수와 교직원수에

따라 다 정해진 만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연초에 계획한 대로 학교 운영이 착착 이루어진다면,

약간의 변수로 인한 추경이 이루어질 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자꾸 언급되는 추경에 대한 정의를 찾아봐야겠다.

주체를 정부에서 학교로 바꾸면 정확한 정의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와 체험학습, 특강 계획 등등 줄줄이 취소되었고

교육청에서는 이로 인해 불용이 예상되는 예산을 코로나 방역 예산으로 최대한 쓰라고 안내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정작 현장인 학교는... 아주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상황보다도 초짜 실장인 나에게 더 큰 고민이 있었으니 내가 예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이 예산서를 들고 와서 여기서 이거 사도 돼요? 이 예산을 이 예산으로

돌려도 되나요? 등등 질문을 쏟아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선생님,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남편 찬스! (운전도 그렇도 업무도 그렇도 남편님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다.

남편은 재작년 학교로 나와 거의 모든 실무를 섭렵한 상태이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흐르니 어느 정도 예산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예산을

건드려야 할 시기임을 직감했다. 아주 호기롭게 선생님들께 추가경정 예산서 서식을 뿌린 후

행정실 예산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역시나 돈이 많다. 조정 조정 조정.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쓸 수는 없다. 각 예산 담당자분들에게 하반기에 얼마나 필요할지 계산을 부탁드리고

나도 상반기 지출액의 평균을 내서 조금 여유롭게 남겨놓고 조정 시작. 그런데 이 초짜 실장에게 시련이 온다.


나는 사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조금 많이 남겠지만 우리에겐 도서관 리모델링이 있으니까

그리고 도서관 비품비가 생각보다 적게 잡혀있으니까 거기다가 투자하면 되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말한 금액은 내가 생각한 거보다 너무 적은 금액이었고 결국

이번 추경에서 건드려 보지도 못한 큰 금액이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아직 9월이고 내년 2월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여유 예산이 꼭 걱정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민이다.


이런 상황들을 거쳐 추경예산 취합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시스템에 입력을 하고자 내 업무 스승인 남편님을 모시고 스마트워크센터에 갔다.

스마트워크센터. 내가 속한 지역의 도교육청에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임산부, 원거리 근무자 등등

필요한 사람들이 미리 신청을 해서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랑 남편도 생활근거지보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해당되어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은 충분이 충족. 사실 코로나가 심각해서

계속 운영을 하는지 여부도 몰랐다. 그런데 운영을 하고 있다기에 의아했으나 곧 풀린 나의 의문.


코로나 이전에도 칸막이 설치로 개인적인 사무공간이 조성되어있던 스마트워크센터. 정말 스마트하다.ㅎㅎ

남편의 도움으로 조금씩 예산을 건드리기 시작. 너무 겁을 먹었나. 생각보다 훅훅 넘어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도 조정해보고 저렇게도 조정해보고. 각 예산 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도 해보고.

사실 이렇게나 예산 변경사항이 많은지 몰랐다. 학운위 날짜 지정하기 전에 교무부장 선생님을 통해

물어봤을 때 도서관 추경 말고는 없다고 하셨는데, 막상 안건 내라고 하니까 우르르 쏟아지는...

역시 모든 건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예산 조정을 하다 보며 느낀 건 차라리 이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예산업무에 대해 맛만 본 단계이고 우리 학교가 규모가 작아서 그런 거겠지만

그냥 차라리 이게 낫다.


인건비 업무도 사실 1년 이상이 되면 기본 루틴이 똑같아서 어렵지는 않은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돈을 너무너무 작은 단위로 나눠 써야 하고,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분들은

입사 퇴사 등등 변동사항이 많아서 그때마다 급여 조정에 보험가입 상실신고에 일할계산에

아주 머리가 아프다. 평균임금에 통상임금에 퇴직금에 연차수당에.


이것만으로도 아주 골치가 아픈데 나날이 좋아지는 처우개선 덕분에 없던 수당도 생기고

기본급 기준도 바뀌고, 각종 수당 기준도 바뀌고, 계산방법도 바뀌고 아주.. 지금 이 순간

다시 돌이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작은 학교는 그나마 괜찮다. 큰 학교에 가는 순간

직종도 엄청 많고, 직종별로 급여체계가 달라서 아주 정신이 없어진다.


게다가 외국어고등학교 같은 특수학교에 가면 외국인 급여도 줘야 하고, 보험가입 여부 체결 현황이나

세금 면제 협약 현황까지 파악해야 한다. 이제 7급이니 찐 나 홀로 실장에 가지 않는 한 급여를 할 일은

거의 없으니 다행이다. 오죽하면 그 전 큰 학교에 부장님이 급여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을 했을까.


여하튼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예산안 확정 결재를 올리고 최종결재가 났다.

실장이 되고 첫 추가경정예산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 남편에게 이 영광을.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남아서 걱정이다. 우선 추경해놓은 것부터 열심히 쓰고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실장이 되고 급식소 수리, 도서관 이사, 유치원 자동문으로 교체, 카드 지출, 그리고 이제 추경까지 했고

앞으로 남은일이 줄줄이 사탕이지만 힘내자. 지금까지 했듯이 차분히 차분히.


초짜 실장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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