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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Oct 19. 2020

오랜만이야, 학교운영위원회(2)

학교운영위원회 (2)

드디어 학교운영위원회 당일이 되었다.

다행히 운영위원회 시간이 오후 세시여서 아침부터 종종거리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로 출근했다. 오전에 할 일 하고 점심 먹으니 어느새 1시. 이제 드디어 진짜 실전에

투입되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남몰래 심장만 두근두근.


운영위원들 명패와 필기구를 꺼내 점검하고 운영위원회를 이끌어갈 위원장님을 위해

시나리오도 출력하고(간사인 내 껏도 뽑고) 간사이자 안건 제안자인 나 역시도 안건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제안설명서도 뽑아놓으니 더 긴장이 되었다.


때맞춰 운영위원들에게 제공할 다과도 도착.

통상적으로는 운영위원회가 끝나면 다 같이 가서 식사를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식사가 불가하여

식사비로 잡혀있는 예산을 이용해 간단하게 개별적으로 챙겨갈 수 있는 다과를 준비하였다. 샌드위치와 컵과일. 음료는 기존에 행정실에 접대용으로 사놓았던 음료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 내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운영위원회가 이루어질 장소에서 학생들 특강이 잡혀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운영위 시작 20분 전이라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분명 오늘 세시에 운영위원회 한다고 전체 공지를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황당했지만 특강 선생님의 말을 또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시간이 겹치지 않으니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학교들처럼 회의실이 따로 있으면 사실 펜 접시와 명패, 다과만 가져다가 후다닥 세팅하면 20분 안에 준비를 마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따로 회의실이 없는 소학교인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과학실에서 학운위를 진행하는데, 평소 과학실은 수업을 위해 학생들이 칠판을 보는 형식으로 책상이 배열되어있고 우리는 ㄷ자로 책상을 배열해서 회의를 해야 한다는 점. 즉, 책상 재배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특강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운위를 위해서 아이들의 학습시간을 줄일 수도 없는 것, 최대한 수업이 끝나자마자 준비에 들어가기로 하고 행정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걸 학운위를 통해서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특강 끝나자마자 특강 담당 선생님과 안건 제안자 선생님들이 다 과학실로 우르르 몰려가서 행정실 식구들과 함께 책상도 재배열하고, 다과 및 필기류까지 싹 배치를 해주신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하니 진짜 10분 정도에 세팅 끝. 우리 학교 좋은 학교. 게다가 다행히 위원분들이 딱 시간 맞춰 와 주셔서 여러모로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운영위 시작. 행정실장은 학운위에서 간사 역할을 한다.


[간사]: 명사  

       1.         일을 맡아 주선하고 처리함.              

       2.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직무.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출처: 네이버



장황하게 설명되어있지만 쉽게 말하면 사회자이다. 새로 발령받은 만큼 내 소개를 먼저 하고, 회의를 시작했다. 사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는 처음 보는 위원분들(+관리자)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게 너무 떨렸지만, 그나마 미리 작성해놓은 시나리오가 있어서 차분히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시나리오가 정말 신의 한 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리기는 매한가지. 중간에 목 막힘이 한두 번 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넘어갔다. 제1안, 2안, 3안... 그리고 마지막 추경 제6안까지 무사히 통과.


보통 학운위의 심의 과정은 1. 위원장님의 안건 상정

                             2. 안건 제안자의 안건 설명

                             3. 위원들의 질의응답
                             4. 가결 혹은 부결

로 이루어지는데 부결되는 경우는 내 공직생활 6년 동안 딱 한번 봤다. 학운위에서 부결이 되면 그 안건은 진행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수학여행 안건을 올렸는데 학운위에서 부결이 나면 수학여행을 진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학운위 자체가 심의, 자문 기구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그 심의 결과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현행법상 부결된 것을 무리하게 진행하면 그에 따른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60조]

제60조(심의 결과의 시행 등) ① 국·공립학교의 장은 운영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그 심의 결과와 다르게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이를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② 국·공립학교의 장은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경우 교육활동 및 학교 운영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의 사유로 운영위원회를 소집할 여유가 없는 때에는  제32조 각호의 사항에 대하여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이를 시행할 수 있다.③ 국·공립학교의 장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시행한 때에는 관련 사항과 그 사유를 지체 없이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심의, 자문기구이지만 법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웬만하면 원안가결(원안 그대로 통과)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초짜 실장의 첫 학교운영위원회가 끝이 났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지. 끝날 때까지는 진짜 끝난 게 아니라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가 끝났다고 해서 나의 할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운영위원회에 심의 결과 전송 및 학교 자체적으로도 심의 결과 보고 공문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결재가 나면 학교 홈페이지에 심의 결과 및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 그 후, 나는 추경이 원안 가결되었기 때문에 예산 확정을 결재 맡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이제 예산집행 시작!!


사실 이렇게 글로 쓰면 간단하긴 한데, 심의 결과 이송 공문, 심의 결과 문, 회의록 작성하는 게 의외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다. 특히나 회의록 작성 같은 경우에는 회의 당시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가면 작성할 때 일일이 들으면서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메모한 것을 가지고 써야 하는데 일기를 쓰는 것처럼 편하게 쓰지 못하고 공문서답게 써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공직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공문서답게 쓰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공문서답게 써야 하고, 띄어쓰기도 신경 써야 하고, 공문서 작성요령에 관한 규정이 또 따로 제정되어있는데 이에 맞게써야한다.)


예산 확정 기안문까지 결재가 나면 학운위가 진짜 마무리된 것이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끝마쳤다. 다과류를 알아봐 주고 챙겨준 교무실무사님, 본회의 세팅에 도움 주신 많은 분들. 마무리까지 도와주신 선생님들. 다 모두 감사드린다.  


보통 학운위는 1년에 3-5회 정도 하는데, 우리 학교는 이제 겨울방학 전에 한번 정도 남은 것 같다. 물론 긴급안건이 생기면 또 열 수도 있으나, 학운위 자체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바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변수가 없는 한 예외는 없을듯하다. 그때는 조금 더 여유롭게.. 능숙하게 진행해보길 기대하며. 학운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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