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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r 17. 2022

강의를 하라고요?(3)

후기

드디어 후기글! 강의를 하라고요?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https://brunch.co.kr/@jsmbja/531

https://brunch.co.kr/@jsmbja/532

이번 주 월요일. 3월 14일 9시-12시까지 세 시간의 강의를 드디어 마쳤다. 

강의 시작 전, 몸이 안 좋았다. 목이 칼칼했고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시간이 되자 38.2도에 이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강의 담당자의 배려와 코로나 시국이 만나 연수원이 아닌 집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기에(비대면 연수였다.) 쉬는 시간마다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수강생은 13명이었고, 강의 담당자와 모니터링하는 분까지 합쳐 총 15명이 내 강의를 들었다. 

첫 시간이 가장 고비였는데 막상 수강생들 얼굴을 마주하니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건, 대부분의 수강생분들이 강의에 호의적이었고 그중 몇 분은 적극적으로 필기도 해가며

호응도 해주시며 들어주었기에 그 몇 분들에게 마음을 두니 강의가 점점 안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첫 시간 강의 연습할 때는 35분이 나왔는데 막상 강의를 하고 나니 43분이 걸렸다. 

긴장해서 말도 급하게 쏟아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보건대 긴장한 내가 강의 중간중간 리액션도 크게 하고 즉석에서 생각난 말도 서슴없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마치고 나니 목이 점점 더 아파왔다. 

따뜻한 물로 겨우 진정시키고 시작한 두 번째 강의. 

내가 너무 두 세분만 쳐다보고 강의를 해서 그런지 그 두세 분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눈이 마주쳤는데,ㅋㅋㅋㅋ서로 피하기 바쁜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당황한 나는 다른 분들께 시선을 돌려봤으나 다른 분들은 무표정으로 뚫어지게 나를 보거나

대놓고 기지개를 켜는 분도 있어서 도저히 마음 둘 곳이 없어 결국 나는 그 두세 분에게 다시 돌아갔다.

(기지개를 켜시는 분은 딱 한 분이었는데, 연세도 있으신 분이 너무 대놓고 기지개를 두세 번이나 켜셔서 그럴 거면 왜 강의 신청을 하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 나이에 세입을 하신다고..? 늦깎이 합격생이신가, 아니면 그저 집합교육이 필요하셨나, 강의가 지루한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두 번째 강의가 끝나고 나니 한 시간 남았다는 생각에 긴장도 풀려서 그런지 목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강의 담당자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자 지금까지 너무 잘해주셨다며 마지막 시간은 더 짧게 하셔도 된다길레, 마음 놓고 강의 시작.

준비한걸 다 쏟아내니 35분쯤이 되었길래, 5분만 더 하자는 생각으로 강의 어떠셨냐고 물어봤다. 


횡설수설한 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도 안 좋고, 흥분하면 말을 빨리하기도 해서 즉석 평을 듣는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수강생분들이 좋은 평을 해주셨다.


*감사사례를 같이 보여줘서 좋았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 강의하느라 수고하셨다.


등등등..



아주 좋았던 경험이었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막상 끝이 나고 나니 다음에도 또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이래서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물론 다시 제안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잘 아는 분야였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6월인지 9월인지 전문가 강사 양성과정 심화 부문 연수가 있다던데 꼭 신청해야겠다.

전문 강사까지는 못 가더라도 가끔 불리는 강사가 되고 싶은 욕심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


더불어 내가 강의를 해보니 잘 들어주고 호응 좋은 수강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불량스러운 수강생이었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줌 연수를 들을 때 집중이 안되면 핸드폰을 보거나 멍을 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강의하시는 분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는지.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 




이번 강의로 인해 얻은 좋은 점이 아주 많지만(새로운 경험, 약간의 자신감, 그리고 입금될 강사료..?ㅋㅋ)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건 오랜 기간 내 속에 잠들었던 가르침을 향한 욕망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도록 가르치는 역할을 해왔다.


대학 때는 과외를 쉬지 않고 했었고, 학원에서도 가르쳤었고 대학 졸업해서는 영어강사로 2년간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는 것이지만 과외도 그렇고 학원도 그렇고 영어강사도 그렇고 언제나 내 자리가 불안했고 처우도 안 좋았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한 부품과도 같은 존재였고 월급이나 과외비는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조건들은 나의 의욕을 꺾기에 아주 최적화돼있었고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렇게 도돌이표 같은 가르침에 그치고 말았다. 회의감과 좌절감이 늘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쯤 찾아온 공무원 합격은 이 참에 이 지긋지긋한 무력감에서 벗어나자는 큰 계기가 되었고,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가르치는 행위를 아예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고, 할 기회도 없었으며, 하려고 조차 않는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채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10년 만에 다시 가르치는 위치에 서본 것이다. 10년 전과는 다르게 성인이 그 대상이었고, 까딱 잘못하면 아주 평판이 추락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래도 한 번에 거절하지 못했던 건 없어져버린 줄 알았던 나의 가르침에 대한 본능이 아직 내면에 살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불어 10년 전에, 돈과 처우를 다 떠나 그저 가르치는 시간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이 뒤늦게 밀려오기도 한다. 아마 그랬다면 같은 공무원의 자리라도 행정직이 아니라 교육직이었을지도 모르고, 공직이 아니었다면 어느 학원의 강사, 아니면 여전히 과외선생님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아니지, 내 특성상 불안정한 건 미치도록 싫어하니까 아마 교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딱히 엄청난 해피엔딩은 아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옆에서 선생님들을 지켜보며 느끼는 거지만 어느 직업이나 다 음영은 있고, 급여적인 것 빼면 딱히 선생님들이 부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몇 달 전쯤, 아는 엄마들과 수다를 떨던 도중 자기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일을 좀 잘하지"

"나도 내가 일을 잘하는 걸 알아, 그래서 일이 몰리는 거고."


겸손이 미덕인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배워온 세대들의 엄마들이 어떻게 저런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멘붕이 왔었다. 지금도 약간 그런 기분이다. 뭐하나 특출 나게 잘하지 못하는 나란 사람. 그런데 공무도 수행하고, 글도 쓰고, 이제는 가르치는 위치에도 꾸준히 서고 싶은 나란 사람. 


누군가의 앞에서 "내가 이건 좀 잘하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의 후기 끝. (댓글로 믿음과 용기를 보여주신 모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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