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풀어본 박스에는 "빵"이 가득 담겨있었다. 지금을 사는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할 테지만 우리 세대의 학창 시절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던 빵들. 추억의 삼*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삼* 옥수수빵이었다. 빵을 보자마자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나는 20년 전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이 맛있는 빵을 눈물로 적시며 꾸역꾸역 먹고 있는 19살의 나를 만나고야 말았다.
"안녕, 오랜만이야."
"...."
"많이 배고프지? 어서 먹어"
"..."
무슨 말을 건네야 했을까. 정말 배가 고파서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 와중에 공부는 해야 하니까 빵을 입안 가득 욱여넣는 교복 입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해 늘 도망쳤던 내가 너무도 갑자기 아무 준비 없이 이렇게 어린 너를 만나 무엇을 전할 수 있었을까.
잠시 기억에 갇혀있는데 종이 울리고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한꺼번에 들어왔다. 쉬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하하호호 웃으며 "와 이 빵 오랜만이다" "진짜 많이 먹었었는데." "선생님은 이 빵 모르지?" "몰라요" "이걸 몰라? 와 세대차이 나네~"하며 새록새록 추억을 열어보는 동안, 그 옆에서 나는 웃으며 울고 있었다.
"실장님!? 실장님도 이 빵 알지?"
"당연히 알죠~~ 우리 같은 세대인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며 하하 호호 웃는 내가 가증스러웠는지 마음이 자꾸 욱신거린다. 어느새 빵을 다 먹은 그 소녀가 악에 받친 듯 있는 힘껏 내 속을 발로 차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니?'
질책한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어'
맞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웃고 떠들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건, 그래서 같이 밥 먹으러 급식소로 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건, 저녁을 못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러 특별반 교실로 이동하면 배고픔에 몸서리가 쳐졌던 건, 그래서 쉬는 시간에 남몰래 매점으로 뛰어가 가격 대비 가장 크고 묵직했던 삼* 옥수수빵과 우유 하나를 사서 급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건, 먹는 내내 안쓰럽게 쳐다보는 매점 아주머니의 눈빛을 견뎌야 했었던 건, 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니 너의 잘못이야'
이건 무슨 소리일까. 내 잘못이 있었던가. 친구를 만들지 못했던 죄. 성격이 지금처럼 푼수스럽지 못했던 죄. 혹은 모의고사 한번 잘 봐서 괜히 특별반에 들어갔다가 빵 하나 먹고 12시까지 버텼던 죄. 어떤 죄?
"실장님~~ 빵 골라봐, 나는 이 옥수수빵은 도저히 못 먹겠더라~~"
"그럼 제가 먹을게요."
"그래? 알았어~~"
"그럼 나는 보*달~~"
또다시 하하호호하며 빵을 하나씩 집어 든 선생님들 사이에서 옥수수빵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우두커니 바라본다. 먹지 않았지만 먹은듯한 느낌으로. 많이 작아졌네. 아직도 팔고 있네. 얼마일까. 하는 쓸데없는 질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퇴근길 배가 고파왔다. 하필 내 가방 속에 들어있던 옥수수빵. 무심코 뜯어 입에 넣으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라서. 여전히 그 맛이어서. 그리고 지금도 나는 빵을 입에 욱여넣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