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건교사이다. 보건교사가 되려면, 우선 간호학과에서 교직을 이수해야 한다. 졸업을 하게 되면 졸업증서와 함께 2급 교사자격증을 받게 된다. 교사자격증을 받았어도 간호사면허가 없으면 헛일이다. 보건교사는 기본적으로 교육자이나, 학생들의 질병과 부상에 대한 처치도 함께 수행해야 하므로 간호사면허도 꼭 있어야 한다. 의료인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의 자격까지 있으니,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여하튼, 내가 현재 보건교사라는 건, 내가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교사이자 간호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원래부터 내가 보건교사를 꿈꿨던 건 아니다. 간호사조차 꿈꿔본 적 없으니 말이다. 나는 뼛속과 혈관과 세포까지 '문과 기질'로 가득 찬 사람이다. 나는 국어와 영어 점수가 뛰어났고 그에 대비 수학과 과학 점수는 별 볼일 없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의 삶을 살았었는데, 그나마 고1 때 좋은 과외 선생님을 만나 무너졌던 수학의 기초를 다시 세워, 수학시험 시간에 틀릴지언정 문제를 풀기는 하는 경지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리얼 수포자는 수학시험칠 때 대충 찍고 엎드려 잔다. 내가 수능감독할 때는 수리 1 시간에 아예 시작부터 끝까지 잠만 자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일지언정, 간호과에 장학금씩이나 받고 입학한 데는 내가 수학과 과학을 포기하려 할 때 잡아 주신 여러 선생님들의 공이 정말 크다. 여하튼, 나는 나 자신도 선생님들도 문과임을 확신하는 학생이었고 지망학과도 영어교육과, 국어교육과 등 절대 문과계열이었다! 내 적성과 별도로 의료계열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 같은 걸 가지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나는 메디컬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아도 내가 저런 현장에서 일을 한다거나 해보고 싶다거나, 여하튼 비슷한 생각이라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간호사가 되고 보건교사가 된 건, 다 이놈의 IMF 때문이다.
흔히들 'IMF사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97년 겨울에 발생한 'IMF구제금융 요청 사태'로 인해 '인생이 바뀐'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거다. 다행히 아버지가 망하시거나(아버지 사업 안 함) 유학 갔던 언니가 돌아와야 했다거나(언니 유학 안감)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냥 늘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는 아주 평범한 소시민의 집이었고 IMF전에 잘 나간 적도 없었고 IMF사태가 터졌다고 흔들릴 것도 없었다. (흔들릴 게 있어야 흔들리지...) 다만, 대학졸업을 앞둔 언니와,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딸 둘을 둔 아버지의 멘털이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IMF구제금융사태가 터진 1997년 12월 3일은 나의 수능성적표가 나온 날이기도 했다. 기대한 만큼의 점수는 못 받았지만 평소 지망했던 국어교육과는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연일 침울한 뉴스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 심각성을 체감할 수 없었던 나는, 입시를 치르는 평범한 수험생답게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원서를 구입해서 쓰고 도장을 받고 그런 일들을 해나갔다.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는 다행히 IMF의 여파에 휘둘리지 않았지만 불안해진 아버지는 나에게 계속 너 사립대 등록금 못 대준다, 너 자취 못 시킨다, 를 계속해서 주입시켰고 그래서 나는 지방 국립대 사범대 위주로 원서를 썼다. 입학원서와 필요서류를 모두 준비하고, 담임선생님의 도장까지 다 받았으니 이제 접수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는 내게 간호학과를 가라는 거다. 간호사? 제가요? 저 뼛속까지 문과고 간호사가 되는 건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갑자기? 왜? 너무 어이없어 말도 안 나오는 내게, 아버지는 "무조건 간호대에 원서를 넣어라. 안 그러면 등록금 안 줄 거다."라고 엄포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일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