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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Jul 25. 2022

나 흔들려, 운태기야

그러니까 나를 좀 잡아줘

집을 나서면서 커다란 백팩에 레깅스 한 장, 상의 한 장, 비닐봉지에 담긴 하얀 실내 운동화를 챙겨 넣습니다. 좀 더 챙겨 넣고 싶을 땐 BCAA를 탄 물병 하나, 프로틴 셰이크를 탄 물병 하나를 더 담죠. 덤벨 운동이 많은 날에는 탄탄하게 내 손을 지켜줄 푸른색의 가죽 스트랩도 한쌍 챙겨 넣습니다. 이렇게 백팩 한가득 운동용품을 대부분 담고 외출을 하면 언제든지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핑계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


핑계. 헬스장에 도착하기까지 그 핑계가 참 많아요. 버스 2번, 지하철 3번을 환승하느라 걸었던 거리가 2만보를 넘기면 이제 머릿속에 생각이 맴돌죠. 


나 오늘 유산소 꽤 한 것 같은데?

그럼 이제 헬스장에 안 가도 되는 핑계가 하나 생깁니다. 생각은 힘이 강해요. 이런 생각을 마치고 나면 걸어갔다 오는 거리,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머릿속에 퐁퐁 샘솟거든요. 그 샘물에서 나온 핑계는 체세포 분열을 하는 세포처럼 무한 증식합니다. 결국 침대에 누워 쉬는 게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죠.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 맥주 한잔에, 간단한 안주거리를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치익-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맥주 따개가 구부러지고 꿀꺽꿀꺽 마시는 맥주는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수 없어요. 헬스장을 건너뛰었지만 이게 바로 인생 사는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먹는 소리 외에 이 공간을 채우는 다른 소리가 없으니 공백을 채워보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고 유튜브에 접속했습니다. 스우파(스트리트우먼파이터) 영상 하나만 보려고 했는데, 추천 영상에는 어느새 멜로가 체질 요약본이 떠있네요. 결국 일은 안 하고 유튜브나 보다가 누워서 스르륵 눈을 감아버립니다.


맥주, 안주, 그리고 유튜브는 매일 즐기다 보면 한없이 나태해지는 루틴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운태기가 찾아왔습니다. 매일을 편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저를 지배했달까요. 마음 놓고 행복하면 모르겠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운동 다녀온 지인들의 게시글을 보면 또 마음 한편에 답답함이 자리 잡습니다. 내가 운동을 미뤘다는 죄책감, 자책감, 속상함이 서로 뒤엉켜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음이 보여요.


재밌는 운동을 하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운동이 재미있고, 계속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어요. 그런데 헬스장 운동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는 걸까요. 나도 재미있는 운동이 하고 싶어요. 운태기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줄 재미난 운동을 만나고 싶습니다. 탱고 학원도 뒤적, 크로스핏 공간도 뒤적하며 네이버 지도 위에 '운동' 키워드를 검색하고 손가락으로 지도를 줄였다 늘렸다 검색합니다. 이렇게 멀면 안 갈 텐데, 하는 핑계는 또 머릿속에서 샘솟아요.


나는 언제쯤 이 운태기에서 벗어나 운동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고 싶어요. 운동 당신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 눈앞에 나타나 주세요, 재미난 운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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