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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un 02. 2022

다 싫다던 6살 아들이 변했다.

그가 태권도 체험수업을 다녀오던 날

"싫어."

"싫어."

"안 해."

"난 집에 엄마랑 있을 거야."


어디라도 좀 보내보려고 할 때마다 들었던 한결같은 대답들. (운동만 빼면) 무엇이든 너무 의욕적이라서 고민이었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나를 곤란하게 했다. 어린이집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는 아침마다 아등바등 온몸으로 울어대서 몇 달이나 진땀을 뺐다. 울지 않게 된 후에도 가기 싫어한 건 마찬가지. 작은 핑곗거리만 생겨도 드러눕기 일쑤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첫 육아 경험이었던 첫째는 많이 달랐다. 활동적인 편이 아니라서 트니트니는 싫어했지만, 그리 시끄럽지 않은 문화센터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좋아했다.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무조건 영어 방과 후를 듣겠다고 우겨서 공부시키기 싫은 엄마를 곤란하게 했고, 여섯 살이 되니 한자도 배우고 싶고, 일본어도 배우고 싶고, 중국어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당황시켰다. (결국 구몬 일본어, 중국어 이런 걸로 맛만 보여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사 ok이었던 건 아니다. 아들인데 너무 정적인 것만 좋아하는 게 걱정이 돼 축구를 시키고 싶었는데, 그건 한 번 해보더니 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생각해보니 그 역시 처음에는 일단 해보겠다고 좋아하며 갔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축구가 아니라도 하고 싶은 게 차고 넘쳐서 줄여야 할 지경이었으니까.


둘째도 더 어릴 때는 형아가 미술학원에 가면 자기도 가고 싶다고 하고 구몬 선생님이 오시면 자기도 하고 싶다고 투정을 했었다. 그러니 유치원을 싫어해도 학원은 보낼 수 있겠거나 생각했다. 드디어 6살. 이제 미술이든 태권도든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꿈아, 우리 미술학원 갈까?" 그런데 이게 왠 일.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가고 싶다던 애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싫어." 형과는 달리 지나치게 활동적인 아이라 이번에는 장르를 바꿔 물었다. "그럼 태권도는 어때? 줄넘기는?" "싫어. 난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매일 집에서 엄마랑만 놀 거야." "꿈아, 잘 생각해 봐. 엄마랑만 놀면 지루하잖아. 태권도 가면 더 신나게 놀 수 있어." "아니야. 나 하나도 안 지루해. 엄마랑 놀이터 가면 되지.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잖아."


언제나 아이는 앞서가며 뒤를 보고 말한다. 엄마, 더 빨리 와야지.


'하아, 아들아. 그래서 그러는 거야. 엄마는 그게 너무 힘들어서... 그게 문제라고.....'

그저 놀이터 지킴이를 하는 건 그래도 할 만했다. 문제는 자전거와 킥보드였다. 집 앞에서만 도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 아이가 타는 자전거를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뛰고 보면 그날은 저녁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 킥보드도 마찬가지. 앞뒤 안 가리는 6살 아들. 언제 찻길로 그냥 쓔웅 들어갈지 몰라서 저 앞에 찻길이 보이면 거기서부터는 전속력으로 달려 아이를 따라잡아야 했다. 동네 엄마들은 아이가 엄마 운동시킨다며 허허 웃었지만 나에게는 매우 진지한 문제였다. 어떻게든 태권도를 보내야겠다.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도와준다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길이 나타났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의 킥보드를 따라 한 시간은 뛰다가 들어가는 길이었다. 더 놀고 싶다기에 엄마는 도저히 더 움직일 수가 없으니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자고 하고 근처 파라솔 아래 앉았다. 그런데 그때 옆 파라솔 아래에 앉은 엄마 셋의 대화가 들렸다. "여긴 왜 6살 남자 친구가 없을까? 매일 내가 놀아주느라 너무 힘들어." 헛. 이것은 내가 늘 하던 생각이었다. 5살 남자아이들도 많고, 7살 남자아이들도 많고, 6살 여자 아이들도 있는데, 이상하게 6살 남자 친구만 없는 게 늘 의아했다. "저기.... 6살 남자아이인가요? 저희 아이도 6살 남자아이예요." 나도 모르게 옆으로 고개를 쭉 내밀어 이 말을 꺼낸 건 두 번째 문장에 너무 공감해서였다. "매일 내가 놀아주느라 너무 힘들어."


그다음부턴 일사천리. "진짜요? 그 친구 어디 있어요? 우리 인사라도 시켜줘요." 너무 불쑥 말을 건네었나 머쓱할 겨를도 없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가 돌아왔다. 두 아이를 부르고, 서로 6살 친구라고 말해주고 같이 놀라고 했더니. 그날부터 두 친구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러다 이름 닳겠다 싶게 서로를 부르고, 유치원 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를 찾았다. 그 친구 엄마와는 매일 카톡을 하며 약속을 잡았고 킥보드를 가지고 놀이터에서 만났다. 아이들끼리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들은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친구가 태권도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꿈이야, 친구는 태권도 다닌대. 친구랑 같이 한번 가보는 거 어때?" "그래." 아하하하. 그간 체험수업만 가보자고 할 때도 심드렁하던 애가 너무 쉽게 넘어왔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태권도장에 전화해서 체험수업을 신청했다. 두근두근하며 아이를 태권도장에 들여보낸 그날. 마칠 시간 즈음해서 관장실에서 관장님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수업을 끝낸 둘째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얼마나 신나게 뛰었는지 머리는 땀으로 엉망이고 양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더 반가웠던 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쏟아낸 흥분한 목소리였다. "엄마, 나 태권도 내일도 올래. 나 매일매일 올래. 월화수목금토일. 다 올래."


조금 전까지, 아이가 오기 싫어했다는 둥. 뭐든 시작할 때 거부감이 있다는 둥. 조심스레 상담하던 게 다 무색해졌다. 흥분해서 다른 사람 말은 들을 생각도 없는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금요일은 바빠서 안 되겠어. 엄마, 월화수목만 오는 걸로 하자." 하하, 엄마도 모르는 어떤 스케줄이 금요일에 있나 보다. 그렇지만 그게 어딘가. 주 4일이나 엄마에게 50분의 자유시간을 더 허한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바로 등록. 그리고 지금까지 신나게 태권도를 다니고 있다.


도복을 받아온 첫 날, 너무 신난 아들.



덮어놓고 무조건 싫다고, 그것도 격렬하게 싫다고 주장하던 아이가 태권도를 경험한 그날 바로 달라졌다. 50분의 마법. 급격한 마음의 변화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동네에 큰 소리로 자랑하고 다닌다. '어제까지 내가 싫다고 말했으면 그게 어때서. 오늘은 이렇게 좋은데, 뭐.' 이런 자기 위안 따위도 필요없다. 그냥 어제는 싫었고 오늘은 좋은 거다. 나는 가끔 이런 아이가 부럽다.


우리는 경험한 만큼 안다.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경험의 힘은 세다. 물론 '간접'보다는 '직접'이 훨씬 강하다. 50분의 샘플 수업으로 180도 달라진 아이의 마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도 아이의 태권도와 비슷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좋아할 만한 것들. 내 무의식이 '싫다'는 신호를 보낼 뿐, 사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판단할 수조차 없는 것들. 그렇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하기 싫다고 느끼니까 그건 내가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 일.


여전히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이 아이의 태권도 다음은 무엇일까? 나의 지금 스텝 다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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