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라마는 또 이렇게 끝나,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끝났는지조차 모르게~~" 차에서 음악을 듣다가 쫑긋했다. 나의 드라마는 이렇게 끝난다.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끝났는지조차 모르게. 찾아보니 연애 이야기를 빗대어 쓴 가사다. 그런데.. 이게 연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음, 아니면... 내가 일과 연애하고 있어서 이 가사에 그렇게 공감하게 되는 걸까? 일과 진득하게 말고 자꾸 헤어지는 그런 연애를 하고 있어서??
지난 2월 퇴사를 했다. "여기가 아니라면 다시 조직생활을 하기는 힘들 거야.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함께 창업을 준비하면서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이면서 조직생활을 하는 일. 육아휴직의 끝에 사직원을 낸 관계로,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길은 의미가 있었고 그 길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지만, 버리지 못한 미련이 있었다. '조직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보다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어서, 그저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같다. 친구의 창업행에 올라타는 건 그런 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언제나 그리웠던 조직생활. 그걸 다시 해볼 기회였으니까.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같이 하기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새로운 계단을 오르면서 좌절하는 만큼 성장하는 내가 있었고,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 물성이 있는 결과물이 손에 잡혔다. 꽤나 호기롭게 시작했고, 떠들썩한 축하도 받았다. 프로페셔널 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 좋았다. 첫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렇게 부딪히면서도 프로페셔널한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서로 티격 대고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은 결과물을 향해서 함께 뛸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멋있었다.
그런데 끝이 왔다. 창간을 하고 2권까지 만들고, 겨우 틀을 다 잡아놓고 그만둬야겠다고 말했다. "완전히 결정한 건 아니지?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거지?" 당황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고, 나는 답했다. "나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만두는 쪽으로 결정하게 될 것 같아. 그래서 얘기하는 거야. 미리 얘기해둬야 준비할 수 있으니까." 그런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잖아. 이제 틀도 잡히고 상황이 점점 더 나아질 텐데.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그만두면 아깝잖아." 맞는 말이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나의 대표님이었던 친구를 믿는다. 무어라도 해낼 친구라고. 그 시작에 창업 멤버로서 함께 달리는 게 그래서 즐거웠다. 아직은 조그마한 새싹이지만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를 키워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자주 했다. 그 여정을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다면 꽤 의미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일을 위해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계속해서 포기할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일이 싫었다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날들이 싫었다. 어쩌라고. 나도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서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 손으로 끝을 만들었다. 그런데 끝을 내고 보니 어딘가 허무해졌다. 1년도 다 채우지 못했다. 8개월... 어디 내놓기에도 애매한 기간이다. 이건 내 경력일까, 아닐까? 첫 직장 신입사원 시절 자주 했던 생각이 있다. "못해도 3년은 채워야지." 그리고 3년이 지나고 정말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했었다. 3년은 세상이 말하는 최소한의 업력 기준이었다. 3년은 해야 경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퇴사 후 몇 개월이 지나고 보니 더더욱 가벼워졌다. 8개월의 시간은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내가 매거진 창간이란 걸 한 적이 있던가, 내가 두 권의 매거진을 만들기는 했던가, 취재하고 인터뷰하던 날이 언제였더라. 나조차 꿈결 같은 찰나의 시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창고 살롱에서 했던 서사 공유가 떠올랐다. "시작만큼 응원받아야 하는 '끝'에 대한 이야기" 나는 그때 나의 끝을 응원하고 싶었다.
8개월 만에 끝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8개월의 시간에 나를 얼마나 갈아 넣었는지,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건 나만 안다. 그 '끝'을 응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내 끝만 응원할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끝'을 듣고 함께 응원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살롱지기 혜영 님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때 내가 하고 싶다고 했던 건 사실 나만의 서사 공유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오픈 기획 살롱 서사 공유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형식은 다르지만, '끝'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겠다고 답했다. 창고 살롱지기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외쳐서가 아니라, 타인이 원해서 말하게 되는 기회. 그런 건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실제로 살롱 발표자료를 만들면서는 여러 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런 찌질하기 그지없는 고민 과정을 공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을 내서 들으러 와주는 분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이걸로 충분할까. 리허설 후 피드백에 어느 때보다 더 귀 기울였던 것 같다. 그걸 바탕으로 충실히 수정했다. '시작'을 얘기할 때와는 다른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끝'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창고 살롱은 열린 곳이었고, 그렇게 나를 짜내고 짜낸 '끝'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열어 들어주었다. 내가 '끝' 이야기를 굽이굽이 풀어낼 수 있었던 건 사실 '끝'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끝'에 마음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만큼 지리한 고민과정을 길게 풀어낼 수 있었다. 누구나 '끝'을 두고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고민의 답이 '끝'이라고 해도, 그게 결코 포기가 아닌 또 다른 선택임을 기억해주었으면 했다. 내가 겨우 나를 응원할 수 있게 된 여정이, 누군가가 더 쉽게 자신을 응원하는 지름길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날, 내 서사를 공유함으로써 나눈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 자리엔 나보다 더 단단한 사람들이 있었다.
창고살롱 인스타 피드에 올라온 오픈기획살롱 후기
"나의 드라마는 또 이렇게 끝나,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끝났는지조차 모르게~~" 우리의 많은 이야기들이 아무도 모르게 끝난다. 나는 어쩌면 그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끝난 일들 그 무엇도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까.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더 높은 곳에 이르는 사람들은 대단하지만, 끝냈다고 해서 그 시간이 가벼운 건 아니니까. 외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끝'을 응원하고 싶다고. 같은 마음으로 같이 당신의 '끝'을 응원하고 싶다고.
오늘 '끝'을 선택하는 누군가에게도 오늘의 응원을 보낸다. '끝'을 위해 쏟았을 에너지와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계속하는 선택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나에게도, 그리고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