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단상
여기저기 미라클모닝을 하는 세상이지만, 내 알람은 7시에 울린다(5시도 힌든데 3시나 4시에 일어나는 분들은 정말 너무 존경스럽다). 7시 알람도 사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핸드폰에서 취침모드를 설정하라는 안내가 뜨길래, 별생각 없이 11시 30분부터로 7시로 설정한 게 화근이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반으로 설정된 아침 알람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알람이 울렸다. '뭐야, 7시잖아. 이 시간에 왜 알람이 울렸지?' 취침모드가 기상알람 기능도 있는지 몰랐던 나는 난데없이 (내 기준) 너무 일찍 잠을 깨버린 거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던 내가 루틴을 놔버린 건 코로나에 걸린 후부터다. 분명 코로나는 나았는데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하루를 부유하다 끝내는 느낌. 그전에도 미라클모닝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수면시간이 늘어난 건 확실했다. 적정 수면시간이라 생각했던 7시간으로는 턱도 없고, 9시간은 자야 개운한 탓에 자꾸 기상 시간이 늦어졌다. 8시 반은 둘째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위해 일어나야만 하는 시간의 최전선. 겨우겨우 먹이고 입혀 내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느닷없이 울린 7시 알람에 잠시 짜증이 났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계속 이렇게 게으를 순 없지 않은가. 오늘은 7시 기상의 첫날로 삼자. 해가 늦게 뜨는 계절이라 거실에 나가 물 한 잔 따르는 마음이 더 뿌듯했다. 이른 새벽에 깬 부지런쟁이가 된 느낌이랄까. 고작 7시에 일어나 놓고서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큰맘 먹고 1시간 반이나 일찍 몸을 일으켰으니 알차게 시간을 써야 할 터. 귀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찻잔을 꺼내 차를 우려냈다. 아껴두었던 초에 불도 붙였다.
한쪽 모서리에 초와 차를 나란히 두고 책을 펴다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막 타기 시작한 초는 심지에서부터 조그마한 우물을 만들어 간다. 투명한 물에 담긴 티백은 황금빛 아지랑이로 피어나다가 이내 전체를 물들였다. 그러고 보니 차와 초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
'아, 아이들이 일어나면 이 초를 충분히 태우지 못하고 꺼야 할 텐데.' 하는 생각 덕분에 얻은 깨달음이다.
이런 종류의 초를 처음 태울 때는 윗 면이 모두 녹을 때까지 충분히 태워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 덜 녹았을 때 꺼버리면 태우는 내내 표면이 고르게 타지 않고 경계가 생긴다. 크기에 따라서 윗면이 다 녹는 시간이 달라지니, 오래 태울만한 여유가 없다면 단면이 넓은 새 초는 켜지 않는 게 좋다.
차도 마찬가지다. 초의 단면을 태우는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어찌 됐든 기다려야 한다. 나는 차를 우리기 전 꼭 상자의 디렉션을 확인한다. 오늘의 차는 5분. 티백을 우릴 때 찻잔과 소서만큼이나 중요한 건 티백을 놓을 작은 그릇이다. 시간이 되면 쓱 건져서 둘 곳이 필요하니까. 홍차나 녹차가 쓰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티백을 건져내지 않고 다 마실 때까지 그냥 두는 것이다. 적정 시간이 지나면 쓴 맛이 진해진다. 그러니 차의 쓴 맛이 싫다면 더더욱 이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럼 5분이 지나기 전에 얼른 건져버리면 더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충분히 우리지 않은 차에서는 싱거운 풋내가 난다. 유퀴즈에 나온 라면 회사 연구원에게 라면을 어떻게 먹는 게 가장 맛있냐고 물었더니, 봉지에 적혀있는 조리방법대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답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현장에서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더니 온도계와 타이머를 이용해 정확하게 조리해 냈다. 차도 마찬가지다. 상자에 괜히 디렉션을 적어놓은 게 아니다.
사실 차를 우리는 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찻잎에는 다양한 성분이 들어있고 시간과 온도에 따라 녹아 나오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효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래 방치할수록 쓴 맛을 내는 성분이 더 많이 나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쓴맛을 줄이겠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잠시 우려내면 찻물 속의 성분이 불균형해진다. 이 중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카페인과 카페인 대사산물 (파라잔틴, 데오 브로민, 데오필린)이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차에도 카페인이 들어있다. 커피와 다른 건 카페인을 분해하는 대사산물이 같이 들어있다는 점. 카페인은 비교적 빠르게 용출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 기다리지 않고 티백을 꺼내버리면 카페인만 녹아 나오고 카페인 분해 대사산물은 충분히 우러나지 않은 차가 된다.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기다림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5분을 기다려 티백을 꺼냈다. 균형 잡힌 쓴맛에 상큼한 향이 남은 차가 만들어졌다.
충분히 기다린다. 아니, 적당히 기다린다. 완전히 비우거나 완전히 채운 게 아닌, 적당히라는 표현은 언제나 더 어렵다. 얼마나 기다리는 게 충분할까. 삶의 모든 순간이 기다려야 하는 타이밍을 차와 초처럼 명확히 보여주진 않는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초 표면이 매끄럽게 타려면 처음 켤 때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녹여줘야 한다는 건 경험과 관찰을 통해 알게 됐고, 차를 우릴 때 티백을 꺼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건 공부를 통해 알게 됐다. 부지런히 관찰하고 배우다 보면 삶의 타이밍도 손에 잡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에 분명히 보일만큼 선명해지지는 않더라도, 손으로 더듬어서 유추할 수 있는 만큼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꾸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