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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Sep 16. 2024

생태유학, 꼭 와야 할 사람과 오지 말아야 할 사람

그런 건 없지만...

산골생태유학이 두 학기 째로 늘어났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곰배령 설피마을에서 자연에 묻혀서 살기 시작한 것도 어언 7달째다. 초4 딸아이는 세상 신났다. 학교 전교생과 친하고 전교생의 대부분이 이웃에 산다. 집에서 2분 거리인 학교,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책가방을 툭 던져놓고 '다녀왔습니다~'를 외치고는 '놀고 올게요~' 하고는 쪼르르 다시 나간다. 청소년 유해시설도 없고, 대기오염도 없고, 학원 뺑뺑이도 없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자연을 벗삼아 신나게 놀뿐이다. 겨울이 무척이나 긴 설피마을은 새 학기의 시작을 눈 속에서 출발했다. 학기 초 아이들의 놀잇감은 키만큼 쌓여있는 눈더미였다. 눈이 녹으면서 개구리가 나오고 새가 새끼를 낳고 텃밭을 일궜다. 여름엔 계곡에서 물고기를 관찰하고, 물놀이를 하고, 이웃 양양 바닷가에 가서 놀았다. 이제 가을의 초입이지만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놀잇감을 찾는다.


전교생 9명의 진동분교 아이들은 큰 트러블 없이 가족처럼, 형제처럼 우애 좋게 한 학기를 지냈다. 함께 지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의 우정이 깊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서로를 위해주는 진동분교 아이들은 참 복이 많은 편이다. 아직까지 한 명도 중간에 도시로 돌아간 친구 없이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생태유학 또는 농촌살이, 산골살이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된다. 저마다 산골(농촌)살이를 선택한 사연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다 보니 일률적으로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중도에 도시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생겨난다.


시골살이를 떠나기 전에 그렸던 것과 실제 생활이 많이 달랐기 때문일 게다. 아니면 철저한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이런저런 불편을 만나면서 유턴을 재촉했을 수도 있다.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부모와 아이가 시골살이의 낯설고 불편한 어떤 점을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아이와 함께 시골유학을 떠난 부모의 블로그 등을 보면 처음에 가졌던 희망이 여러 가지 불편에 부딪히면서 퇴색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뭐라고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와 아이가 지내고 있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은 '냉대습윤 기후' 지역이다. 말 그대로 춥고 습한 지역이란 뜻이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다. 여름은 짧고 시원하다. 다만 엄청나게 습하다. 원래 기후가 습한 데다가 마을 뒷산 꼭대기에 거대한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자리 잡아 365일 습기를 공급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제습기의 도움이 없이는 꿉꿉하고 눅눅한 습기를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식탁에 앉아 도시락김 봉지를 뜯어 놓고 밥을 먹으면 밥 먹는 중간에 김이 눅눅해져서 축 늘어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자연이 풍부한 곳이니 만큼 각종 동식물과 미생물도 풍부하다. 노린재, 집게벌레가 어느 틈에선가 기어 나오고, 무당벌레와 거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왕소등에에게 다리를 뜯기고, 초파리만큼 작은 등에모기가 순식간에 열 방씩 등을 빨았다. 주먹만 한 산왕거미가 처마 밑에 거미줄을 치고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와 딸아이는 벌레에 관한 원칙을 세웠다. 집 안에서 발견된 벌레는 가급적 죽이지 않고 잡아서 내보내기로 말이다. 사각 생수병의 위쪽 3분의 1 지점을 3면만 도려내 포획도구를 만들고 우리는 그걸 '최신식'이라고 불렀다. '최신식' 덕분에 목숨을 건진 벌레가 아마 수백 마리는 될 거다. 생수병 안에 들어있는 벌레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건 망외소득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벌레를 끔찍이 싫어한다. '인섹토포비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이해는 간다. 그런데 정말 죽을 만큼 벌레가 싫다면 시골살이를 선택했을 때 어마어마한 불편을 겪게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본인의 '치명적인 포인트'가 시골살이와 맞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블로그에 인제살이를 연재하던 한 부모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반년 만에 도시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인제는 춥다. 많이 추운 게 맞다. 누군가에겐 견디지 못할 만큼 추운 것이다. 진동분교 9명의 아이와 그 부모들은 추운 겨울과 폭설을 즐겁게 겪었다.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람살이도 중요한 요소다. 손만 뻗으면, 돈만 내면, 클릭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풍요와 편리함은 이곳 산골과는 거리가 멀다. 택배도 들어오지 않고, 주변에 가게도 없다. 장을 보든 병원에 가든, 머리를 자르러 가든 기본이 40분 운전이다. 경찰서도 주민센터도 멀다. 인제경찰서는 자동차로 1시간 20분 거리, 기린면 주민센터는 40분 거리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곤란은 병원이 없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다는 인제군에는 상급병원이 없다. 의원급도 손에 꼽는다. 이웃 양양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제에도 양양에도 소아과,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이런 과목별 의원이 없다. 병치레가 잦은 아이 또는 부모는 이곳에 들어와 살기가 매우 꺼려질 수밖에 없다. '아프지 않는 수밖에 없다'는 건 최근의 응급의료 대란 이전에 산골살이를 결정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낯섦 또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나와 아이, 진동분교 부모와 아이들은 훌륭히 산골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생태유학을 진행하는 인제로컬여행사업단에 중도에 산골살이를 포기한 사례를 문의해 봤다. 드문드문 산골살이를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면서 사이가 틀어져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경우라고 한다. 모두가 사이좋은 여기 진동분교는 좀 특이한 케이스가 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자란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트러블에 어른들이 개입하면서 싸움이 커지고 결국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경우로 악화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승마, 서핑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품고 들어왔다가 충족되지 못한 눈높이가 불만으로 변해가면서 산골유학을 접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생태유학 진행자들이 나의 질문을 받고 나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생태유학을 오지 말아야 할 아이는 없다. 생태유학을 오지 말아야 할 어른이 있을 뿐이다."  시골살이를 준비하는 어른들이 미리 진득하게 알아보고, 마음을 독하게 먹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생태유학 또는 시골살이를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 메일 보내주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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