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틀면 공기순환이 잘 돼서 난방비가 줄어든다고?
1. 오늘 팩트체크 해 볼 주제는 '겨울철 난방비 아끼는 방법'인데요. 어제가 입동이었어요. 본격적으로 겨울이 찾아오는데요. 난방비 걱정하실 분 많을 겁니다. 그만큼 이 난방비 아끼는 방법과 관련된 정보가 많은데요. 사실과 다른 내용도 많다면서요?
- 네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생활 정보 분야에 사실과 다른 내용의 정보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대부분 블로그, 유튜브 글입니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는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가공해서 글이나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다른 누군가가 이걸 확인하지 않고 복사해서 옮깁니다. 또 누군가가 이걸 퍼 나르고 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확산되는 겁니다. 여기에 공공기관까지 복사해서 붙여 넣기 복붙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요. 공공기관도 별다른 확인 없이 이런 내용을 퍼 나르고 있기 때문에 일반 정보 이용자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숨어있습니다.
2. 첫 번째로 살펴볼 내용이 <가습기 함께 틀면 난방비 줄인다>인데요. 이런 내용 저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요?
- 거의 모든 언론이 난방을 할 때 가습기를 함께 사용하면 난방비를 줄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매일경제는 <난방효과 올리려면 보일러·가습기 동시 사용>이라는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이 기사는 "보일러 가동과 함께 가습기를 틀면 수증기에 의해 실내 습도가 오르면서 공기 순환이 빨라져 쾌적성이 향상된다"라고 언급합니다. MBC는 "가습기 사용도 난방비 절감에 도움이 됩니다. 습기 덕분에 공기 순환이 잘 돼 보일러를 틀었을 때 실내 온도가 더 빨리 오르고, 수증기가 열을 품고 있어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다른 많은 언론사들의 관련 보도도 비슷한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3. 그럼 많은 언론사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같은 이야기를 한 건가요?
- 우리나라 언론의 악습이 있는데요. 근거를 밝히지 않는 겁니다. 예전에 신문 지상과 방송 보도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지면과 방송 시간의 한계 때문에 근거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요. 요즘 온라인 보도엔 사실상 이런 한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게 관행처럼 됐습니다. 이 가습기 난방비 절감 보도에서도 대부분의 기사가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부 보도들은 에너지공단으로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에너지공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난방비 절약 실천 요령>을 설명하는데요. "보일러 가동 시 가습기를 틀면 수증기에 의해 실내 습도가 높아지면서 공기순환이 빨라지며 물의 비열 상승으로, 열을 오래 간직하는 효과가 있어 난방 효율 상승 및 쾌적성 향상"이라고 밝힙니다.
4. 이 설명이 사실과 다른가요?
- 보일러를 틀 때 가습기를 함께 틀어주면 가습기에서 작은 물방울을 뿜어내게 됩니다. 가열식 가습기는 물을 데워서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것이고, 초음파 가습기는 진동자가 떨리면서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데요. 가열식 가습기는 물을 데우는 것이기 때문에 실내 온도 상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가습기가 실내 온도를 상승시키는 기여분과 전기요금을 비교해 봐야겠죠. 애초에 가습기는 난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난방 효과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습기가 뿜어내는 작은 물방울은 건조한 실내 공기와 만나서 증발합니다. 이때 주변의 열을 흡수하면서 기온을 낮추게 됩니다. 따라서 습도가 높으면 같은 부피의 공기를 데우는 데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죠.
수증기에 의해 실내 습도가 높아지면서 공기 순환이 빨라진다는 이야기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실내 습도가 아무리 높아지거나 낮아져도 공기의 순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설사 공기 순환이 빨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난방비를 절약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물의 비열 상승으로 열을 오래 간직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 설명도 이상한데요. 물의 비열은 1로 정해져 있습니다. 1kg의 물 온도를 1℃만큼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 1kcal인데요. 이게 비열 1입니다. 물의 비열은 공기의 비열보다 4배 정도 크니까 실내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증기가 열을 오래 간직하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데울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므로 난방비 절감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에너지공단 측에 왜 이런 자료가 나갔는지 물어봤는데요. 확인되는 대로 답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5. 난방할 때 가습기 틀어놓으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 네 난방을 하게 되면 실내 공기는 필연적으로 건조해집니다. 실외 공기가 차갑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적은 상태인데요. 이 실외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와 데워지면 수증기를 품을 수 있는 여지는 커지는데 수증기량은 적은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상대습도가 굉장히 낮아지는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실내 공기가 건조하면 호흡기 질환 우려도 커지고 피부도 건조해지고 여러모로 괴롭죠. 그래서 겨울철 실내 적정 습도를 40~50% 정도로 권고하는 겁니다. 이 정도 습도를 유지하려면 빨래를 널거나 가습기를 가동하는 등 인위적으로 공기 중에 수증기를 집어넣어야 됩니다.
6. 가습기 가동과 난방비 상관관계를 실험한 방송이 있다는데요.
- 10년 전쯤에 위기에서 탈출하는 내용의 교양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그냥 난방을 하는 것과 가습기를 틀어놓고 난방을 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가습기를 틀어놓고 난방을 하는 쪽이 더 빨리 실내 온도가 오르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실험 조건이 정밀하지 않게 설계돼 있습니다. 첫 번째 실험 이후에 실내 온도를 낮춘 뒤에 보일러와 가습기를 함께 틀고 온도를 측정하거든요. 근데 엄밀한 시험이 되려면 바닥의 온도를 같게 만들고 실험을 했어야죠. 환기를 해서 실내온도를 낮췄다고는 하지만 이미 방바닥이 달궈져 있는 상태에서 보일러를 가동한다면 더 빨리 실내 온도가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실험을 인용한 보도도 많이 보이는데요.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은 실험이라 언론보도에 인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7. 난방비 절감과 관련된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또 다른 이야기도 짚어보죠. 겨울에 집을 비울 때는 외출모드를 설정해 놓고 나가는 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에 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요.
- 이건 외출 모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외출모드는 혹한기 동파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바깥 날씨가 엄청 추운데 거주자가 보일러를 꺼놓고 집을 비우면 보일러 배관 속에 들어있는 물이 얼면서 보일러와 배관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건데요. 외출 모드로 설정하면 보통 섭씨 5도 정도에서 보일러가 가동됩니다. 그야말로 얼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루 반나절 정도 외출 한다고 외출모드로 설정하면 보일러를 끄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왜냐면 짧은 시간 동안 실내 온도가 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여러 날 집을 비우는 여행이 아닐 바에는 외출 모드로 설정하는 건 보일러 전원을 끄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보일러를 끄면 온도가 떨어지고 외출 후에 돌아와서 보일러를 설정 온도로 맞추면 잃었던 온도를 회복하느라 열량을 많이 소모하게 된다는 강조하는 겁니다. 일상적인 외출이라면 설정 온도를 2~3도 정도 낮추고 나갔다 오는 게 난방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8. 온수를 쓴 뒤에 수도꼭지를 냉수 쪽으로 돌려놔야 난방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 대체로 사실입니다. 일단 냉수를 사용하려고 물을 트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요. 아무 생각 없이 온수 쪽으로 돌려져 있는 수도꼭지를 들어 올려서 틀었단 말이죠. 이때 보일러에는 온수를 보내기 위해 점화하라는 신호가 보내집니다. 그리고 가스든 기름이든 보일러가 연료를 태우겠죠. 지역난방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물을 트는 순간 온수관에 연결돼 있는 온수계량기가 돌아가는 것이고요. 아차 싶어서 냉수 쪽으로 돌린다고 해도 이미 연료를 소모한 상태고 온수계량기도 돌아간 상태죠. 이런 것들이 쌓이면 난방비 부담이 늘어나겠죠.
일각에서는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려놓으면 물을 틀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일러가 점화된다고 하는데요. 이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9. 뽁뽁이라고 부르죠. 공기가 들어있어 볼록볼록한 포장지요. 이걸 창문에 붙이면 난방효율이 높아진다고 많은 분들이 붙였는데요. 이건 어떤가요?
- 뽁뽁이가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유리창의 한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방향을 잘 가려서 붙여야 합니다. 남향 등 평소 햇볕이 잘 드는 방향이라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에너지가 더 크기 때문에 붙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북향이나 해가 들지 않는 쪽 창에 붙이면 충분한 단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난방 해결책은 집의 기밀성을 높이는 겁니다. 바깥에 찬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뚫려있는 틈을 막는 건데요. 문풍지를 붙이거나 틈새막이를 이용해서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보일러를 연료효율이 높은 1등급 제품으로 바꾸는 걸로도 30%가량 연료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내복을 입으면 2.4도의 보온 효과가 있어 그만큼 난방온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집안을 덥게 만들어 놓고 반팔 입는 것보다 적정 실내온도인 20도 정도로 맞추고 집안에서 실내복과 잠옷을 입고 지내는 것이 난방비를 아끼는 동시에 지구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