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야 둘째기야 무사하니?
강원도 산간지역, 특히 양양부터 간성(고성)까지 동해안과 인접한 태백산맥을 낀 지역은 해마다 낙엽이 지고 날씨가 건조해지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날이 건조하고 양간지풍(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바람)이 불면 대형 산불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주말 사이에도 양양 서림리에서 산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주민이 대피했다고 해서 굉장히 큰 불이 난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이틀 만에 진화가 됐습니다. 수고하신 관계자분들께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양양 서림리는 경진네가 생태유학을 하던 인제 진동2리와 맞닿은 곳입니다. 조침령 터널을 지나 구불길을 내려가면 마주치는 곳이죠. 진동2리는 택배가 오지 않아서 항상 서림리 편의점에 택배를 부탁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서림리에 산불이 나서 주민들이 대피를 한 거죠. 서림리뿐만 아니라 공수전리, 영덕리, 송천리 주민들에게도 대피 권고가 내려지기도 했죠. 초5 경진은 우리가 살던 설피마을도 불길에 휩싸이면 어떡하냐고, 서림리 해담마을 주민들은 어떡하냐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강 건너' 다큐멘터리 팀에게도 산불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산불 피해를 당한 곳은 어떻게 자연이 회복되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등등을 확인하러 현장에 나갔었죠. 강 건너 팀은 지난 10월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 산불 피해지역을 찾았습니다. 2019년 산불이 났었던 곳인데요. 새로 심은 아기나무들이 자라나 가까이에서 보면 여느 산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산이 아닌 초원으로 보일 정도로 달랐습니다. 나무가 아직 덜 자라서 빽빽하지 않기 때문에 산비탈의 토양이 보이는 거죠. 토양까지 햇빛이 내리쬐기 때문에 볕을 좋아하는 다양한 풀들이 자라나 마치 양들이 풀을 뜯는 초원처럼 보이는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난히도 산불이 크고 잦았습니다. 특히 강원도 지역은 강풍과 맞물려 불이 커지면서 사람이 끌 수 없는 정도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죠. 우리가 찾았던 인제 남전리 지역 산불도 2019년 4월 4일에 시작돼 이튿날에도 꺼지지 않고 그다음 날인 4월 6일에야 진압됐습니다. 마을 주민이 밭에서 잡풀을 태우다가 강풍에 불이 산으로 번졌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실화로 시작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국도 44호선인 설악로를 따라 인제군 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38 대교가 나오는데요. 조금만 더 인제군 쪽으로 가다 보면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민둥산을 가까스로 면한 산들이 보입니다. 구글 위성 지도로 보면 주변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축구장 483개 면적(345ha)의 산림을 태우고, 비닐하우스 10동과 흑염소 130마리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금액으로는 23억 4000만 원의 피해액이 산출됐습니다.
참혹한 산불이 지나간 지도 6년 반이 지났는데요. 현장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다행히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소나무가 주종인데 비해 산불 피해지역에는 소나무가 아닌 어린 나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피해복구를 위해 심은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눈에 띄었는데요. 특이한 점은 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참나무들이 싹을 틔운 어린 나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한반도 야생동물 최고 전문가이신 한상훈 박사님은 "땅속에 떨어져 있었던 참나무 열매들이 산불이 지나간 뒤에 싹을 틔워 어린 나무로 자라난 걸로 보인다"라고 말씀하시네요. 자연의 생명력은 참 위대합니다. 그렇지만 울창한 숲이 민둥산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죠. 숲과 나무에 기대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에게도 슬픈 일이 틀림없을 겁니다. 사람의 한 순간 실수로 오랜 시간 자라난 숲과 산림이 불타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네요.
이후엔 겨울을 대비하는 야생동물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제의 비경 중 하나인 '비밀의 정원' 인근에서 말이죠. 비밀의 정원은 인제군 갑둔리에 자리 잡은 '사진 명소'인데요. 육군 훈련장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수십 년째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동학의 중심 사상을 담은 동경대전을 펴낸 곳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정부가 갑둔리 마을 일대의 토지를 수용해 지금은 민가는 모두 사라지고 고려시대 석탑 두 점만 남고는 역사 유물들은 모두 흔적을 감췄죠.
강 건너 팀은 이곳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한상훈 박사님이 앞장을 서고 경진과 저는 열심히 흔적을 찾았죠. 오소리, 뱀, 다람쥐 등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벌써 겨울잠을 자러 들어갔다고 박사님께서 말씀하시네요. 우리들은 고라니 발자국, 멧돼지가 먹이를 찾느라 파헤친 흔적, 두더지가 이리저리 돌아다닌 흔적을 발견했어요. 박사님은 뱀을 발견했다고 봤냐고 하시는데, 안타깝게도 경진과 저는 못 봤네요. 강원도의 가을을 아름답고 짧죠. 아침저녁으로는 엄청 춥기도 하고요. 그래서 야생동물들도 일찍 겨울잠을 준비하나 봐요.
언제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인제에서의 촬영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다시 숲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숲을 지켜야겠습니다. 산불은 절대로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