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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박쥐의 꿈, 초5 경진의 꿈

강 건너 첫 번째 꿈 구경

by 선정수

돌이켜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너무나도 즐거웠던, 전교생 9명 진동분교에서 생태유학을 마치고 과천 본가로 돌아간 초5 경진은 과밀학교인 과천의 초등학교가 낯설고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전교생 9명이 친형제처럼 뒹굴거리면서 친하게 지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 도시학교가 주는 삭막함이 있었겠죠. 게다가 본가가 이사를 하면서 3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아닌 옆 동네 학교로 전학을 했어야 하니 낯선 느낌은 몇 배나 커졌겠죠. 아는 친구도 없고, 건물도 낯설고, 선생님들도 새롭고, 무엇보다 바글바글 왁자지껄한 과밀학급의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생태유학이 끝나고 과천으로 돌아와서 한 동안 초5경진은 "진동 가고 싶다아~" 또는 "집에 가고 싶다아~"를 외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다행히도 금방 친구를 사귀긴 했지만 어린이들이 많아졌기에 맘에 들지 않는 친구도 여럿 눈에 띄었을 겁니다. 친구와 학교 끝나고 놀고 싶고 주말에 놀고 싶은데, 도시 아이들은 죄다 학원에 들어가 있으니 어울려 놀 친구도 없고, 동떨어진 세상에 고립된 느낌도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과밀 학교의 충격에 휩싸여있던 지난 3월 경진과 저는 다시 강원도 인제로 향했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강 건너 꿈 구경' 촬영을 위해서였는데요. 비록 주말 하루뿐이지만 다시 강원도를 향하는 경진의 발걸음은 왠지 가벼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촬영에 대한 부담감도 감출 수 없었죠. 특히나 재촬영에 대한 거부반응을 나타낸 거였는데요. 경진은 생태유학을 하면서 세 차례나 촬영을 겪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촬영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같은 장면을 다시 촬영하죠. 물론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100% 이해하지만 어린이들에겐 같은 걸 되풀이하라고 하면 굉장히 싫은 일이 되겠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본인이 촬영하겠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죠. 재촬영은 최소화해 달라는 부탁을 촬영팀에게 드리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이날의 촬영 장소는 강원도 인제군 십이선녀탕 계곡이었습니다.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죠. 이 계곡에서 우리는 한상훈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야생동물 전문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죠. 굉장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도 하고요. 끝없이 질문을 해도 끝없이 답변해 주시는 정말 후덕한 스승님이시죠.

1.png 대한민국 최고의 야생동물 전문가 한상훈 박사님.

경진과 저는 한 박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달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수달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컸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지난 1년 동안의 생태유학 경험으로 깨닫게 됐죠. 하지만 우리는 설피마을에 살면서 계곡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해 수달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실체를 보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죠. 우리는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수달 배설물과 발자국을 확인했고 수달이 잘 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한 박사님은 수달의 활동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관찰용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저희도 생태유학 할 때 집 주변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며 설치해 본 경험이 있어 익숙합니다. 텃밭에 심은 공심채를 뜯어먹은 고라니를 비롯해 수달, 삵, 멧돼지, 노루 등을 관찰 카메라로 찍을 수 있었죠.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한 박사님의 설치한 카메라에도 수달이 찍히기를 바랐는데요. 설치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카메라가 떠내려갔다고 하네요. ㅠㅠ

2.png 수달 흔적을 찾으러 갑니다. 하기 싫은 표정 아닙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을 뿐 ㅎㅎㅎ.

다음 장소로 이동했어요. 박쥐를 만나러 갔는데요. 군부대 안에 있는 동굴에 살고 있는 박쥐를 만나러 갔죠. 황금박쥐로 널리 알려져 전남 한 지자체가 순금 거대 동상까지 만들었다는... 바로 붉은박쥐입니다. 인간들은 정말 황금을 좋아하죠 ㅎㅎ.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만 있으면 '황금', 'golden' 이런 말을 붙이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황금박쥐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이기도 한데요. 한 박사님이 어릴 적 즐겨봤다고 하시네요. 나중에 일본 홋카이도대학에 유학할 때 일본인 동료분이 그 애니메이션의 모티브인 박쥐가 '붉은박쥐'라고 알려줬다고 하죠. 귀국해서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이런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줬더니 기자가 대서특필을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선 붉은박쥐라는 국명 대신 황금박쥐라는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하네요. 관련기사

6.png 제작진이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느라 뜨는 시간에 경진이가 모래 그림을 그립니다. 고양이 치치네요.

박쥐를 만나러 간 동굴은 그다지 길지 않았는데요. 오래전에 광산을 개발하려고 시험 삼아 채굴한 뒤에 버려진 곳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이런 곳에 박쥐가 날아들어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죠. 관박쥐와 함께 붉은박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3월이었는데 아직도 쿨쿨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봄이 늦게 오는 강원도 날씨 때문에 5월까지도 겨울잠을 자는 녀석들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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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로 들어가 박쥐를 찾습니다. 3월에도 아직 한겨울이라 붉은박쥐는 꿈나라에 있습니다.

초5경진은 이미 두 번째인(첫 방문은 2024 생태유학 당시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에서) 박쥐동굴 방문이었지만, 눈을 반짝이며 박쥐들을 관찰합니다. 어른들이 미처 찾지 못한 박쥐를 발견해 알려주기도 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아름답네요. 겨울잠을 쿨쿨 자면서 새 봄을 준비하는 박쥐를 보며 이 어린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어린이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이루게 될까요? 소중한 꿈이 자라고 아름답게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박사님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직접 여쭤보진 않았지만, 언젠간 우리 숲 속에서 표범을 만나는 꿈, 야생동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꿈은 뭐냐고요? 제 꿈은 어린이들의 꿈을 소중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거랍니다. 여러분도 함께 힘을 모아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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