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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Jan 06. 2023

정신과 일지4] 집에 혼자 못있는다.

어느날 갑자기 집이 무서워졌다. 말 그대로 집이 공포로 다가왔다. 가장 안락하고 안정을 느껴야 할 집에서 나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문을 열면 누군가 튀어 나올것 같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저 문간 너머의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먼저 불안을 느낀 날을 기억한다. 그 날은 옆지기의 퇴근이 늦어져 나 홀로 집에 있던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스탠드 하나 켜놓고 시작한 공부는 날이 저물어가는 도 잊은 채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목 뒤가 뻐근해져 올 즈음에서야 고개를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주위가 어두워진 것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뻐근한 뒷 목을 신경쓸 틈도 없을만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내 등 뒤에 가득 찬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 어둠 속에 누군가 나를 향해 달겨들 준비를 하고만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한번 샘솟은 두려움은 가라 앉지를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옆지기에게 언제 오냐며 빨리 좀 와달라며 울며 전화를 했다. 놀란 옆지기는 서둘러 집에 돌아 왔고,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고 책상 너머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그 곳엔 현관등 불빛을 등진 옆지기만이 있었을 뿐이다.


나를 공포에 떨게 한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날에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옆지기를 기다렸고, 편히 쉬던 날에도 해가 떨어지면 방문 밖에 나가지 못했다. 화장실이 급해도 방문을 열기가 무서워 꾹 참은 적도 있다. 자면서도 돌아 눕는 일을 못했다. 등 뒤에 누군가 누워 있을 것만 같아서. 그 자와 눈이 마주칠 것만 같아서 잔뜩 긴장한채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시들어가고 내가 세운 울타리 속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옆지기도 점차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보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심장이 허해서 그런거라는 한의사 지인의 말을 듣고 청심환을 잔뜩 사오기도 했다. 최대한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려고 노력했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려 했다.


혹시나 옆지기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나는 온 집안에 불을 키고, 온 집안의 문을 열었다. 방문, 화장실문은 물론이고 팬트리나 베란다 문도 열었고, 하다하다 신발장 문까지 열어 보았다. 그 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면 다시 문을 다 닫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두려움에 떨며 이불 속에 숨어 들어 있어야 했다.


이런 행동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지독하고 지겨운 이 병은 이렇게 어느날 갑자기 두려움의 형태로 내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를 갉아 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숙주로 삼은 기생충 처럼, 나를 옭아메고 먹어치우며 점점 나를 죽어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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