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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Oct 06. 2023

어느 시각장애인의 정신과 방문기 final

당신의 날개는 안녕한가요



  일련의 정신과 진료를 마치며, 신화 속 이카루스를 생각한다.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가졌던 사람. 날다가, 날다가, 끝내 운명처럼 추락해 버린 사내. 비운의 이카루스. 그에게 과연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날개에 관한 첫 번째 단상

  제삼열의 졸고 ‘낯선 여행, 떠날 자유’에서 발췌: 

  결핍은 내게 있어 ‘날개’나 다름없었다. 볼 수 없음에서 오는 결핍은 많은 순간, 나를 어디론가 날려 보냈다. 나는 때때로 결핍된 무언가를 상상했고, 눈을 떠 보면 미지의 공간, 새로운 시간을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주름살, 중학생들의 개구진 얼굴, 별빛, 달빛. 그리고 나를 향한 아내의 미소. 이 모든 게 나의 날개였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던 이카루스의 날개. 시각장애인인 내가 가진 결핍으로서의 날개. 이렇듯 모든 날개는 욕망을 향한 날개짓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날개에 관한 두 번째 단상

  그런가 하면, 이문열 소설가는 도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욕망의 위험성을 십분 경고한 바 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청춘이 사랑이라는 욕망에 빠져 결국 파멸해 나아가는 서사는 우리에게 욕망의 위험성을 잔인하게 경고한다.

  한편 소설가 이상의 ‘날개’는 어떠한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더 날아보자.’라는 마지막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욕망이라는 날개를 잃어버린 인간의 최후는 참으로 비루하다.     


  정리하면, 나에게 있어 장애는 결핍이었고, 나를 추동하는 원동력이었으며, 나를 제 발로 정신과에 방문하게 만든 힘이었다.  

  장애라는 결핍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일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장애에 감사한다!     

 

  핑계가 아니다. 장애는 나를 우울하게, 혹은 불안하게 만든 원흉 중 하나이다. 봄바람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장애라든지 혹은 직장 생활이라든지, 그런 원인을 제가 없애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경도 우울증이라는 결과는 의사인 제가 치료해드릴 수 있습니다.' 또 여자 원장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장애인이시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 불안감 등을 제가 다 짐작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불안장애를 완화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장애에 감사한다. 장애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교사로서 일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부모님 슬하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일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에 감사한다. 나의 날개에 감사한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날개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를 추락하게 만들 수도 있는 날개, 우리를 멀리 미지의 세계로 날려 보낼 수도 있는 날개. 그리고 때로는 정신과에 내원하게도 만드는 날개. 그 모든 날개는 우리 안에 있다.                   




  ‘어느 시각장애인의 정신과 방문기’를 마치며, 우리나라 학교 선생님들의 건강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나라 교사 여섯 명 중 한 명이 극단 선택을 생각한 바 있고, 전체 교사의 63퍼센트가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서울경제 기사 참고), 참으로 남 일 같지 않다. 나 역시 경도 우울증 혹은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고, 내 주위에도 비슷한 문제로 정신과에 내원한 선생님들이 여럿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울, 우리의 불안, 우리의 날개는... 우리를 어디로 날려 보낼까. 당신의 날개는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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