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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 반수연 지음

경계인의 지문과 같은 소설들이다.




나는 떠나온 사람입니다. 

내 어린 날의 가난과 쓸쓸함을 버리고 남쪽 바닷가의 물길을 따라 큰 바다를 건너고 건너 푸른 물이 잇닿은 곳으로 흘러 들어왔어요. 나는 떠나온 그곳에서 명희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였고 북촌의 한옥 갤러리에서 일했던 큐레이터였으며 남해의 포구에서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온 사생아였습니다. 

나는 떠나왔지만 공기풍선 속의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낯선 땅을 헤매고 다녔어요. 

누구의 말처럼 ‘여기선 바닥부터 다시 해야 된다’는 말이 풍문으로 들렸지만 이민자의 삶이란 고단함 그 자체였죠. 이곳에서 나는 혜선이라는 여인이었고 나이프 박스를 들고 다니는 호텔 주방의 수습생이었고 죽은 한 남자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때로는 묘지를 파는 세일즈맨이었고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목수였어요. 그렇습니다. 나는 남자였고 여자였으며 ‘나’라고 하는 우리는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였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떠나온 사람들의 생의 분투가 그 얼마나 남루하며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 나는 남자와 여자의 눈으로 보았어요.  ‘메모리얼 가든’이 갈빗집이 아니라 공동묘지라는 사실을 알면서 나의 생은 삐끗거리기 시작했고 그 묘지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흰 뼈들이 망향의 동산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몸을 땅에 묻고 긴 침묵 속에 빠져 있었죠. 

그때 내가 만난 한 노인은 ‘움직일 수 없는 땅’ 대신 ‘흐르는 바다’를 선택하여 수국이 핀 고향땅으로 돌아갔어요.  나는 작약과 크레마티스가 핀 마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에게는 숨을 곳이 없었던 동굴’ 같았던 통영으로 돌아와 ‘뭉툭 잘려나간 두 개의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죽은 얼굴을 어루만졌어요.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아비의 사랑마저 얻지 못했던 불쌍한 나의 어머니.  그리고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갖지 못했던 나는 사생아였죠. 나는 동네 이웃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와 조롱을 받고 자랐어요. 그야말로 ‘통영’은 나에게 평온한 삶의 둥지가 되지 못했고 ‘어떡하든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었죠.


‘통영’ 밖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새로운 삶을 향한 갈구였지만 결국 나는 ‘통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고향은 그런 곳이죠. 멀리멀리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남철 같은 땅말이에요. 
통영의 작가 반수연(좌측), 네 눈물을 믿지마의 작가 김이정(우측)


그리고 나는 ‘통영’을 떠나  ‘혜선’이가 되었어요. 내 생의 맥박이 깜박이는 전구처럼 힘을 잃어가고 있어요. 힘들게 온 몸을 돌고 나온 가벼운 숨결이 미풍을 타고 노란 국화가 핀 언덕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나는 이대로 낯선 땅에서 사라지는 것일까요?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해요.  식구들이  자꾸만 나를 다른 세상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요. 나는 ‘아이들의 아이’가 된 것인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점점 단절되고 고립되어 가고 있어요. 나를 대신한 베트남 여자들의 짙은 살 냄새가 스멀스멀 나의 방까지  피어오르고 있어요. 남편은 어린 베트남 여자들이 차려 준 수육과 김치를 먹고는 늙은 얼굴에 작약꽃이 피었어요. 이곳은 ‘혜선의 집’인데 낯선 여자들이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뺏으려 하고 있어요. 아래층에서 남편의 발을 씻어주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그들의 은밀한 웃음소리가 젖꼭지 끝으로 몰려와 통증을 일으켜요. 삶은 수육과 새우젓갈 냄새가 계단을 밟고 내 방으로 올라오고 있어요.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나의 발톱만큼 길어지고 있어요.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나의 시간은 어디 있을까요?  오랜만에 내 옆에 누운 남편에게 물어봐요. 

‘여보 여보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밤이 아주 깊은 것 같은데’라고 말이죠. ‘혜선의 집’에서 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어요.  나는 어디서 온 누구였을까요? 


사실 내 꿈은 작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프 박스’를 메고 퍼시픽 호텔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해요. 10개월 요리학교의 마지막 과정인 현장실습 시간이에요. 당근 삼백 개의 껍질을 벗기고 천 개가 넘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8시간 동안 과일만 깎았어요. 하지만 누구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나는 주방에서 아무런 쓸모없는 투명인간에 불과했죠. 그냥 요리학교에 등록하지 않고 그 돈으로 치앙마이로 가서 죽을 때까지 글을 써보는 것이 어땠을까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지난 10개월 동안 다닌 요리학교는 내가 작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고 다시 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어요.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는지도 몰라요. 나는 고역의 노동 속에서 길을 묻고 다시 길을 물으며 길을 찾았어요. 내가 여기 올 때는 호텔 밖 철문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왔지만 이제 갈 때는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있는 로비를 지나 호텔 정문으로 걸어 나왔어요. 아주 당당히 말이죠.  그리고 ‘오래된 상수리나무의 연한 새잎’을 보았어요. 그때 나, 명희는 오랜만에 웃고 있었어요.  이제는 글을 쓸 수 있어요. 

등단 16년 만에 소설집을 낸 반수연 작가


그럼 어디서 글을 쓰면 좋을까요? 미루나무 군락지를 지나 자작나무 단풍이 우거진 곳에 그 남자가 살았던 통나무 집이 있어요. ‘사슴이 숲으로’ 향하고 달빛이 자작나무 끝에서 춤을 추는 그곳에서 그 남자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도자기를 구우며 숲 속의 집에서 10년을 홀로 살았어요. 

나는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 남자의 집에 왔어요. 나는 그가 마셨던 커피와 피노누아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그 남자의 생을 생각해요. 그는 왜 고립을 자처했을까요?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제대로 살지도 못한 채 숲으로 들어와 사슴이 돼버린 남자.  

그는 한국의 남쪽 바다가 그리워 그림을 그렸고 둥그런 보름달을 보기 위해 자작나무 숲을 가로지른 26번 국도를 달렸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어요.  어쩌면 사람의 곁을 떠난 고독한 인간만이 택할 수 있는 자멸의 질주인지도 몰라요.  그 남자가 그린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잊었던 내 꿈이 생각이 나요. 나는 한국에서 화가가 꿈이었죠. 그러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남의 그림이나 파는 큐레이터 신세였어요. 그림을 그리다 죽은 남자와 그림을 포기한 내가 이 숲에서 만났어요. 이곳 미국에서도 나와 그는 실패한 사람일까요? 

고요한 숲의 아름다움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여 그냥 이대로 숲이 되고 사슴이 되어도 상관없을 듯해요. 


하지만 국경의 숲은 너무나 위험해요. ‘늑대가 구름 뒤의 달을 보고 우짖고’ 있어요. 그 숲을 빠져나가면 미국이 있죠. 내 이름은 레이첼이에요. 열아홉 일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왔어요. 어릴 때부터 뭘 하고 싶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어요. 어쩌면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식당을 떠돌았어요. 일본 식당이었던 신주쿠와 자신의 가게 이름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니프티 50’s  카페라는 곳도 기억이 나요. 그곳에서 내가 만났던 브라이언, 존, 제리, 캐빈 등 이국적인 이름들이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일본 식당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승우라는 남자. 

그는 화이트락 해변에서 해안선을 타고 국경을 넘거나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의 숲으로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는 불법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일을 했어요. 아주 위험한 일이었죠.  그 남자는 내 옆에서 열네 달을 머물고 떠났어요. 그 떠난 자리에 지수라는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빠의 눈을 닮았죠. 


그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숲으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릴 적 나의 아이는 엄마에게 얼마나 다정다감했는지 몰라요.  

나의 고단함을 풀어주기 위해 따뜻한 찜질팩을 배 위에 올려 주곤 했던 나의 아들 준. 나의 모든 생애를 걸고 준을 키웠지만 이제는 떠나려 해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해요. 이제 아이와의 정든 추억도 자이브 춤 속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준이 어릴 때 동네 할머니께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근데 피아노가 없어 지인에게 빌린 멜로디언으로 연습을 했었죠.  

나와 남편이 돌아가며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준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연주를 했어요. 그렇게 그 녀석을 키웠는데 베티라는 베트남 여자에게 보내야 해요. 베티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에요. 내 이름 ‘수진’을 막 부르고 벌건 대낮에 비키니를 입고 집 안을 뛰어다녀요. 맛있는 것들을 보면 어깨춤을 추고 도대체 예의범절이라고는 찾을 수 없어요. 심지어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강아지처럼 아이를 입양을 한다니 참 이해할 수 없는 베티에요. 내가 가진 상식과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내가 이 준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더 이상 아이의 몸에서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나지 않아요. 왜 이리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일까요?  이제 준을 놓아줘야 할 시간이에요. 아이와 마지막 춤, 자이브를 추며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에요. 술기운이 오르네요. 저기 저 잔디밭으로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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