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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 김금희, 도서출판 창비

김금희는 오래 울고 있던 숱한 마음들을 불러내놓고는 이내 가만가만한 문장으로 그 면면을 어루만진다. '경애의 마음'은 지금 우리의 마음으로 광장처럼 드넓다.
(박준 시인)




내게 10월이면 떠오르는 죽음 하나가 있다.

정확하게 10월 24일 사망하여 하늘나라로 돌아간 내 친구의 죽음.

그 녀석은 너무 착해 전원일기에 출연했던 금동이라고 불렀던 친구였다. 얼굴 가득한 천사의 미소를 가졌던 멋진 녀석. 다소 몸은 통통했는데 그것 자체가 포근한 인상을 물씬 풍겼던 녀석이었다.

그런 친구가 인천항 부두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 밖의 바다로 사라진 것이다.

황망한 생각에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시작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공중으로 사라진 마흔몇 해의 육신.

가을 10월. 그 친구의 기일이 다가오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모습.

아마 생각과 기억은 비례적인 관계가 아닐까?

그 친구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망각된 기억들이 돛을 달고 추억 속으로 질주하게 한다.

하지만 기억의 한계는 그리움의 제자리걸음만 할 뿐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친구와의 추억이다.

저녁 무렵 답답한 마음에 지난 메시지 함을 열어 보면 그 녀석이 보냈던 문자가 보인다.


“다들 모였어? 맛난 것 많이 먹어. 난 항내 대기 중. 오늘 중 집에 갈려나 모르겠어 “


고된 부두 하역 작업을 마치고 지친 손가락으로 자음과 모음을 누를 때 그 녀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글자 하나하나가 그 친구의 몸으로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경애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사랑하는 연인 E를 호프집 화재사고로 잃고 자책감과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살아 있는 날들은 고통.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은 그녀의 평생 업보였다.

술값을 내기 전에는 내보낼 수 없다며 출입문을 잠가버린 호프집 사장, 소방시설 점검에 소홀했던 행정당국의 부실 등. 명백히 E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경애,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힘들었고 한 여자의 남자가 된 남자와의 관계는 절름발이 같은 사랑, 불안의 관계였다. 화재 사고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불가능했고 대학에서 만난 한 남자와의 사랑은 끊어진 풍선 같은 것이었다. 회사의 부당 해고와 노조의 성희롱에 맞서 삭발과 고발로 맞서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부당 전출과 따돌림뿐.


회사의 배신보다 동료의 배신이 더욱 경애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경애 혼자서 텅 빈 창고를 지키며 투명인간처럼 살아야만 했던 고통은 견디기 힘든 시간의 터널.


그렇다. 그녀가 가진 개인의 진실은 무력했고 이탈된 삶은 계속 부수지고 있었다.


더구나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던 연인은 결혼으로 떠나고 깊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버린 경애.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창구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서 이동으로 만난 상수라는 남자.

경애 못지않게 그도 학창 시절 아버지와의 극렬적인 대립과 갈등,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상처 받은 영혼이었으며 회사 내에서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는 투명한 인간에 불과했다.

상수의 유일한 탈출구는 이중생활.

가상공간에서 여성으로 위장하여 여성들의 연애 상담을 해주는 '언니는 죄가 없다'의 페이지 운영이 그것이다.

그 두 사람의 결합.


우연찮게 E에 대한 추억과 죽음의 공유를 통해 상실된 마음을 회복하고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을 통해 알게 된 경애의 연애담. 경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는 상수의 마음.


소설의 공간은 베트남으로 옮겨 좌충우돌식으로 영업망을 개척해 가며 두 사람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항상 이전투구와 면종복배식 배신들이 벌어지고....

또다시 내부 고발자로 몰려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하면서 경애의 마음은 극도로 ‘폐쇄되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과 몰락의 길로 치달릴 때 경애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구원은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 삶은 버티거나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과 모멸을 뚫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가 김금희


소설가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354페이지에 담긴 이별과 슬픔, 치유의 지난한 과정을 잘 담고 있다. E의 죽음과 기억을 공유한 ’ 경애’의 마음과 ‘상수’의 마음이 만나 서사는 로맨스처럼 흘러가지만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과 가장 악랄한 적폐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아득한 먼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개성적인 문체보다 서사를 선택한 작가의 짜임새 있는 구성 방식은 창작의 치열성을 느끼게 한다.

한 축으로는 경애의 마음도 읽을 수 있지만 또 다른 한축으로는 상수의 마음도 읽을 수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다시 대지 위에 우뚝 설 수 있는지 경애는 그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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