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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 타히르 샤 지음,  알이따르 옮김

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그리고 우리는 모로코를 읽었다.



카사블랑카의 일 년은 다르 칼리파(칼리프의 집)에서 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 타히르 샤는 '칙칙한 영국의 해안'과 '쥐꼬리만 한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귀소 본능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동창의 어머니가 소유한 카사블랑카 소재의 집을 소개받게 된다. 그곳은 야자나무와 무궁화 꽃이 가득한 정원, 풀밭 안에 분수대, 부겐빌레아, 선인장 등 온갖 종류의 이국적인 나무들과 오렌지 수풀과 테니스 장, 수영장, 마구간 등이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살롱, 서재, 세탁실, 부엌, 창고 등 최소 12개가 되는 침실들이 있었고 삐딱한 세 명의 관리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타히르 샤의 서재, 시더나무로 만든 책장과 이슬람 책상(사진 출처: 타히르 샤 블로그)

대략 504페이지에 달하는 이 작품은 크게 두 개의 수레바퀴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나는 악령 '진'과의 전쟁이며 또 하나는 10년 동안 방치된 다르 칼리파를 재건축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바퀴는 별개의 사항이 아니라 상호 연계된 골치 아픈 과제들이다.


즉 '진'을 처리하면 집수리는 일사천리로 끝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결과가 발생한다.

'그 집을 넘겨받을 사람은 강한 사람이어야 해'라는 동창의 어머니 말처럼 낡고 주름진 칼리프의 집은 악령인 '진'들과 싸워야 하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입주 첫날밤부터 관리인들로부터 화장실 출입을 엄격히 금지당하고 둥그런 테두리 안에서 온 가족이 잠을 자야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과학적인 상식을 가진 서구적인 인물이지만 관리인들은 오랫동안 미신과 무속신앙에 길들여진 토속적인 모로코인들이다.

이들과의 충돌과 갈등은 집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전복될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달린다. 현지 문화에 낯선 주인공은 관리인들에게 속임수와 농락을 당하며 치욕적인 맛을 당한다.

죽은 고양이가 나무 위에 거꾸로 걸려 있고 집 안에서 쥐와 메뚜기의 창궐 등 해괴망측한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집수리를 위해 계약한 건축가는 차일피일 작업을 미루고 수리를 맡은 인부마저 파괴적인 철거만 일삼을 뿐 그가 꿈꾸는 '고대의 모로코'양식은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다.

다르 칼리파의 문패와 내부 모습, 다양한 이슬람 문양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사진 참조: 타히르 샤 블로그)


더구나 모로코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주인공을 매우 힘들게 한다.

비록 '전통적인 아르데코와 아르누보의 압도적인 선' 등 올드 카사블랑카에 대한 향수에 젖어 이곳을 선택했지만 낯선 이슬람 문화와 모로코인들의 생활양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자신의 비서였던 여자는 돈을 갖고 튀고 새로운 남자 비서는 심심하면 잠적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새로 구입한 자동차(한국산 기아)의 엔진은 중고로 둔갑한 채 암시장에서 불법 거래되고 위법과 탈법을 거리낌 없이 일삼는 모로코의 공권력들, 또한  무질서와 황당함이 판을 치는 카사블랑카의 생활문화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영화 '카사블랑카'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하지만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던 모로코의 악령 '진'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이 원하던 칼리프의 집은 완성되어진다.

결국 모로코의 퇴마사 수십 명을 집으로 초대해 집단적인 주술 행위를 벌이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모로코의 민간 신앙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된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살게 되면 타협하게 된다. 타협하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 대가를 받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난 그대로의 수영장과 아름다운 모자이크 색채로 꾸민 음수대(사진 참조: 타히르 샤 블로그)


카사블랑카에 온 지 1년 만에 진정한 모로코인이 된 것이다. 이 소설은 실제 타히르 샤의 카사블랑카 정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여행소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저자는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의 전통과 문화를 느낀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다. 비록 '위험과 직무 유기의 대명사'이며 '시한폭탄'의 도시이지만 이슬람 장인들의 예술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르 칼리프의 집 수선을 통해 잘 보여준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음수대와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이 새겨진 대문, 푸른색 타일의 목욕탕 등이 증명하고 있다.


소설의 서사는 중구난방으로 터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아주 가볍고 가벼운 문체로 그리고 있어 속력을 내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여기저기서 웃음을 유발하는 지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카사블랑카와 모로코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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