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Sep 18. 2023

사랑은 자유(의)지!!

고양이에게 자유를 허하라!

누군가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비혼주의자는 아닌 데다, 불혹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 만난 상대는 자연스럽게 유력한 결혼 상대자로 여기게 된다. 현재 남자친구와 만난 지 3개월 남짓 됐던 시점이었다.

약간에 주사가 있는 남자친구에 대해 조금 심란한 마음이 든다고 친구에게 토로했다.

네가 자꾸 통제하면 할수록 남자친구는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겠지. 변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통제 때문에 숨기는 모습도 생기지 않을까? 네 말처럼 결혼할 상대라면 더욱더 맨 얼굴을 보는 게 좋지 않겠어? 네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결단하는 게 낫잖아”


맘에 들지 않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내 식대로 바꾸려는 것이, 노력만큼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요’였다.

남자친구를 통제하는 대신 나는 최대한 그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취했다. 더군다나 남자친구는 많은 것들에 대해 나의 허락을 구하거나 일찍이 통보를 해 나와 함께 하는 스케줄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통제보다는 허용하기를 택한 것이다.

이 작전이 통한 것일까? 남자친구는 스스로 룰을 만들었다.

쏘맥을 마시면 더 취하는 것 같으니 어느 자리에 있든 소주 10잔만 마실 거고,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의 말을 믿을 뿐. 그러나 주변에 술 좋아하는 친구들에 말에 의하면 이건 말 그대로 ‘말’뿐일 거라고, 금주는 몰라도 절주는 너무나 어려운 약속이라고 했다)

12시를 넘기 전에 집에 들어가 연락을 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가 실제로 소주 10잔만 마시는지는 내가 그의 곁에 있지 않는 한 확인할 길은 없다.

약속을 이행하는 것보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에서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잔소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이가 잔소리 듣는 걸 좋아하겠냐마는, 나는 타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미리 할 일을 해치워버리는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매우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관계인, 동등한 사이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해야 하는 관계는 너무 힘들다. 지난 몇 번의 연애로 그게 나의 감정을 얼마나 소모시키는지, 내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게 됐다.


곰곰이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더 잘 맞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고양이는 나만 잘하면 잔소리할 일이 별로 없다.

세상에 배변훈련을 따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대소변을 가리는 생명체라니!

처음 조조가 집에 왔을 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변통에 가서 똥을 싸고 그 앙증맞은 발로 모래를 긁어모아 덮으려 애쓰는 걸 보며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제때 충분히 잘 놀아주고, 내가 규칙적인 생활만 한다면 나의 밤잠을 설치게 할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현상유지만 해도 조조는 꽤 행복하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잘 몰라서 안는 것도 조금 무서웠다. 예민한 이 동물이 스트레스받아 괴로워할까 봐. 특히 새끼냥일 때는 조조를 억지로 안아본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조조가 처음으로 나와 살을 닿고 앉았던 순간,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앉아 뚱한 표정을 지었던 순간,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이름을 부르면 ‘냥!’하고 대답하는 순간,

‘까까’ 소리에 그르릉 소리를 내며 다리 사이를 오가며 인사하는 순간,

…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억지로 만든 사랑표현이 아니라서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조조의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나는 조조의 많은 것들을 허용한다. 아니, 허용보다는 방치한다. 그래서 불러도 오지 않는 조조에게 못내 서운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에 괘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 자연스러운 행동이 주는 감동이 서움함보다 더 크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 하지 않으려 한다.

고양이를 키우며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나만의 널찍한 안전펜스 안에서 두고 상대에게자유와 자유의지를 주는 것이라고.

어쩌면 조조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는 선생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09화 말하면 뭐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