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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Mar 10. 2020

1,000권 읽기) 하루 한 권, 900권을 읽다.

​ 어머니의 종이학

  '승리는 노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어떤 고난의 한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 나폴레옹

  지금 내 방은 3면이 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출입문 하나만 빼면 모든 벽이 붙박이장에 책꽂이로 되어 있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로 그득한 책장 한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어항이 하나 있다. 엄청나게 낡은 데다 이곳저곳 긁힌 흔적도 많은데 대략 햇수로도 30년도 더 지난 것이다. 이 어항에는 껌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학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천 마리가 들어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어머니는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수록 종이학을 더 접으셨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 삼시 세끼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느 집보다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다들 가난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또래 친구들 또 한 거기서 거기여서 누가 더 부자인지 혹은 누가 더 가난한지 별 차이가 없었기에 서로 간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함께 성장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집안으로 눈을 돌려 보면 상황은 달랐다. 매일, 그리고 매월 내 어머니는 잠시도 돈 걱정을 하지 않으신 날이 없었고, 그렇게 매일 힘들게 노력을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쪽잠도 제대로 못 이루시던 어머니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셨다. 없는 살림에 당신 주무실 시간도 없는데 애써 껌 종이를 모아서 그렇게 종이학을 접으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매일 하루 한 마리, 어느 날은 두 마리, 손수 접으신 작은 종이학이 모이고 또 모이더니 어느새 꽤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이번에는 시장에서 작은 어항 한 개를 사 오셨다. 그때가 내 기억에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물고기를 키우실 것도 아닌데 웬 어항이람?'

  아무 생각 없이 이유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뒤 어머니는 종이학들을 그 작은 어항에 채워 넣으시기 시작했다. 그저 어머니의 취미겠거니, 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렇게 받아들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항은 드디어 천 마리 종이학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머니는 마치 그것이 보물인 양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수시로 닦으시면서 바라보며 흐뭇해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종이학 한 마리 한 마리를 접으시면서 어머니는 소원을 빌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비셨을 것이고, 또 나와 내 형의 앞날을 기원하셨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연히든 아니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집안 살림살이는 조금씩이나마 점점 더 나아지게 되었다. 어항에 종이학이 가득 찬 이후로는 우리 집 거실 벽장에 한가운데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치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로 진단을 받으셨고, 이듬해 내가 군에 입대하고 나서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군 제대, 복학, 졸업, 그리고 첫 취업.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중에 내가 결혼하게 되어 그 집을 나오게 되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어머니의 종이학을 내 집으로 모셔왔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어머니의 손길이 그 안에 아직도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어머니의 손결과 정성, 어머니의 바람,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책을 읽고, 그 책을 생각하며, 한 줄 한 줄 글로 남기는 것도 어쩌면 어머니가 종이학을 접으면서 생각했던 그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나는 매일 나의 정성과 바람,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서 책을 읽고 또 그 책의 내용과 내 생각을 글로 적고 있다. 마치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1,000일 기도와도 같은 심정으로 책을 읽어 왔다. 이제 900권이라는 마지막 고지를 넘고 앞으로 남은 100권에 힘을 써야 할 시간이다. 9부 능선을 넘었다고 좋아하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100권에 100배, 1,000배 더욱더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종이학 1,000마리를 접은 내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인생은 돌고 또 돈다는 것을. 내가 쓰고 있는 이 독서일기 1,000권 또한 언젠가 내 아이들이 하나씩 읽고 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오늘 나는 900권의 독서일기를 쓰고 나서, 내 어머니의 종이학 1,000마리를 보고 있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종이학을 접고 있는 그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천 권을 향해 남아있는 100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나는 종이학 천 마리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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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어머님이 남겨 주신) 종이학 천 마리가 담겨 있는 어항입니다. 나는 매일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종이학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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