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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Mar 19. 2020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황금'보다 '지금'이 더 가치가 있다.

  '무언가 큰 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괴테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지금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40대, 50대만 들어서도 주위에서 뭔가를 제안하기만 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하는 말들이다. 정작 자신들의 마음속에는 '미친 척 한 번 해볼까?' 이런 마음이 간절하지만 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핑계로 멍석을 깔아줘도 예의를 차린답시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쓰는 것 또한 그렇다. '책 쓰기'라고 하면 으레 '박사급 수준의 논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므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레짐작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나이에 대한 심리적 제약이 더 크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태도가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책이라고 하는 것만큼 나이의 제약이 없는 것도 없다. 소설이나 연극 대본처럼 상상으로 쓰인 책을 제외하고, 대부분 책은 '~을 하겠다'와 같은 희망을 쓴 것이 아니라 '~을 해보았다'라는 경험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험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오히려 쓸 거리가 많은 법이다.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꼰대 어법' 의 표현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 표현이 아닐까? 보통 나이가 한참 많은 선배가 후배들 앞에서 자신이 '젊었을 때의 경험담'이나 그 당시의 업무 성향 등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아랫사람 처지에서는 말의 시작과 함께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장황한 훈화 시간을 하는 것보다는 전하고 싶은 말을 한 번 더 마음속으로 곱씹어서 거르고 또 걸러서 글로써 써보는 것은 어떨까? 그 생각과 말들을 정리한 것에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것이다.     


  약해지지 마라는 제목의 일본 시집(詩集)이 있다. 작가의 약력을 보지 않고 무심코 책을 본다면 그저 평범한 시집 중의 하나라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책을 집필할 당시 작가의 나이는 무려 99세였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나이는 진짜 아무렇지 않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고 책을 펴내지 못한다는 것은 지독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답장     

바람이 귓가에 찾아와

"이제 슬슬

저 세상으로

떠나 볼까요?"

간지러운 숨결로 유혹합니다.

     

그러면 나

고개를 저으며 말해요.

"조금만 더

여기 있을게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거든"     


바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후르르 돌아갑니다.

     

  이와 같은 글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 분은 2013년 향년(享年) 103세의 나이로 타계하셨다. 작가는 이 책 외에도 약해지지 마 2100 등 집필하였으며 살아계셨다면 더욱 왕성한 집필을 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어디 장르가 책에만 있을까. 무려 100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할머니도 계신다. 그녀의 이름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린다. 놀라운 것은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처음으로 붓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평생 농장에서 일을 하셨던 그녀는 관절염으로 인해 집안일이 어려워지자 그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100세에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76세에 시작하여 101세까지 무려 1,600여 작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모지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 : 무지개 (1961년작)


  이처럼 나이 드신 작가님의 멋진 작품이 어디 해외에만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국내에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여기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쓴 작가들은 모두가 여든 살 전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6-25 전쟁 전후 세대들로서, 전쟁으로 인해서, 가난해서, 여자라서 등의 이유로 한글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분들이셨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오시다 어느덧 일흔, 여든 살이 되셨다. 이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학습에 대한 열망은 10대, 20대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렇게 작지 않은 나이로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익혀서 이처럼 환한 꽃과 같은 한 권의 책을 꽃피운 것이다. 책 속에 써진 에세이며 시(詩) 한 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는 글이 없다. 이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눈물바다

                      김영숙     

거제도

아들네에

손주 봐주러 왔다.     


벌써 한 달.

마음은 공부 온통 복지관에

다 가 있다.     


고민 고민

몇 번이고 생각 끝에 말했다.     

아들아, 내가 공부하러 부산 복지관

가면 안 되겠니?     


아들 며느리

온 식구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엄마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단다.     


  이들은 책 속에서 소리쳐 말한다. '우리가 글자를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평생 삶 속에서 축적된 에너지를 글로써 표출해야만 한다. 평범한 사람이면 평범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그 평범함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도 알 수 있도록 발자국을 남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책을 써서 남겨야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나이가 일흔, 여든이 된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분들은 어떻게 그 나이에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마흔이 넘어서라도 나만의 책을 써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생존 독서'를 시작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서야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내 이름으로 발간된 책은 총 세 권(공저 포함)이 있는데 각각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가장 먼저 아내에게, 내 아이들에게, 처가 부모님들께 드렸다. 그것은 단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사위이자 아들로서 드리는 책이 아니다. 책을 쓰는 동안 새웠던 그 수많은 밤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정 작업, 그렇게 어렵게 지낸 인고(忍苦)의 시간을 경험한 작가로서의 자신감이자 자부심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안타까운 것은 '왜 좀 더 빨리 책을 읽고, 책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일종의 후회였다. 아마도 앞서 언급했던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크리에이터 분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나와 함께 당신의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지나고 있다. 이 소중한 시간을 가장 훌륭하게 보내는 방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글이라도 좋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그리고 그 이야기는 세상 누군가가 듣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 이 둘이 조합을 이룬다면 환상적인 글이 될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때로는 '시(詩)'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에 있어 내가 살다 간 흔적을 남겨야만 한다. 지구라는 별에 아주 작게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은 결코 소박한 꿈이 아니다. 내가 한때 존재하였음을 알리는 것은 커다란 꿈이다. 그리고 축복이다.     


  '황금'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지금 바로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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