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나로
어제저녁의 일이다. 나로는 재택근무 중인 헤헤의 무릎 위에서 잠을 잤다.
헤헤의 근무시간이 끝나고 그제야 나로는 바닥으로 내려왔는데, 그때부터 나로는 다리를 절었다. 왼쪽 뒷다리를 땅에 제대로 딛지 못하고 들고 있었고, 헤헤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다.
소형견이라 나로도 어쩔 수 없이 슬개골 탈구 위험이 있다며 병원에서 늘 이야기했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병원에서도 어느 정도는 진행이 된 상태라고 했지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아서 수속을 마치고 가다리면서 혹시 지금은 괜찮을까? 하고 바닥에 내려놨더니 조금 절뚝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변 활동과 마킹을 하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으로는 소형견에서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고질병으로 슬개골이 수시로 "빠졌다, 껴졌다"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로는 어린 강아지라서 일단 두고 보고, 심해지면 수술을 고민해보라고....
결국은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 수술하거나 좀 버티거나...
결정은 역시 견주의 몫이다.
이 작은 생명체를 또 수술대 위에 올리고 싶진 않다. (사실 나로는 1살 무렵 이물질 섭취로 인해 개복수술을 했다.) 무엇이 나로를 위한 길일까? 잘 모르겠다. 사람도 조금 몸이 불편해도 수술하고 싶지 않고 견디고 싶어 하니까. 결국은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결정을 했다.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또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나로를 보고 있다. 그러나 그전에 보던 나로의 모습과 조금 달라진 것은 기분 탓일까.
내가 더 안타까워하면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나로가 언제 떠나게 될까를 또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또 슬퍼지고 걱정이 된다 나로의 견생을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봐야 하는... 행복과 고통 그리고 슬픔까지 모두 견주의 몫이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이별을 생각하면 또 착잡해진다.
나에게 이별의 아픔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이별은 7살 때 아빠와의 이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땐 차마 죽음이란 슬픔 경험하기엔 너무 어렸고 그저 우리 집에서도 이제 제사를 지내는 거구나 하는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가 가시고 정확히 30년 후에 어머니와도 이별했다. 이때가 진짜 죽음이란 단어를 직접 경험했던 때이다. 엄마의 임종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고,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금방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그래서 '이별'이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로와의 이별이라고 뭐 다를까. 그땐 내가 50대가 되어있을 때겠지만, 그때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겠지. 나로와의 행복한 시간을 누렸던 것처럼, 나로를 통한 걱정과 슬픔, 이별의 시간도 함께 감당하는게 견주의 몫이니까.
나로가 떠나는 날에 행복했던 기억 많이 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사랑해줘야겠다.
<2021년 1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