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As easy as turning Over a One's Hand
"쉽기가 손바닥 뒤집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우 손쉽게 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사람의 마음을 일컬을 때도 자주 사용되는 속담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한다는 뜻이죠. 어떤 이는 이런 마음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이 속담이 인생의 소중한 전환점을 선물해준 고마운 표현입니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입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 저는 회사에서 한 동료와 아주 스릴 넘치는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회사가 끝나면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며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행복도 아주 잠시였습니다. 예전 남자친구를 못 잊었던 그녀는 제게 결국 슬픈 이별을 통보했고, 아주 짧았던 사회에서의 제 첫 연애는 그렇게 매몰차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회사 일도 재미없고, 매일 술만 마시고 늦게 들어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괜한 짜증만 부려댔습니다. 구멍이 뚫린 것처럼 가슴 한쪽이 휑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매일 밤 찾아와 걱정해주고 시덥잖은 위로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공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런 한심스러운 나날이 계속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을까요? 네, 한 달도 일 년도 아니고 일주일 맞습니다. 어느 8월의 토요일로 기억을 합니다. 날씨 화창한 주말이었지만 그날도 여전히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세상 근심은 다 가진 듯 어깨는 축 늘어진 채 침대에만 박혀 있었습니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세네 시쯤 되어서는 배가 고팠나 봅니다. 그래도 밥은 먹겠다고 밥솥에 쌀을 올리고, 조금씩 올라오는 밥 내음을 맡으며 함께 먹을 반찬들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운명의 전화가 한통 걸려 왔습니다. 자주 연락하던 가까운 대학 친구였습니다.
"뭐 하냐?"
"왜?"
"뭐 하냐고."
"아, 몰라. 끊어."
"나와라, 놀자."
"싫어."
"그냥 나와라. 여기 종로다."
"아, 싫은데... 근데 여자 있냐?"
"어, 있어."
"예쁘냐?"
"아, 몰라. 예뻐. 얼른 나오기나 해"
"아, 귀찮은데...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여자 있냐니, 예쁘냐니." 세상 근심 걱정을 다 짊어지고 옛 여자를 못 잊어서 밤마다 괴로워하던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경박한 말들입니다. 그러나 경박이고 천박이고 간에, 아마 이때부터였나 봅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다니. 웬걸, 전화를 끊고 나서는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예쁘다"던 친구 말만 계속 맴돌고, 늘어졌던 어깨도 슬그머니 다시 펴지고, 아마 콧노래도 부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해치우고, 뭘 입고 나갈까 고민도 하며 나가는 길에 신촌에 들러 근사해 보이는 셔츠도 하나 사입고, 그 "예쁜 여자"가 있다는 인사동으로 향했습니다. 친구 전화 이후로 밥을 먹을 때도, 뭘 입을지 고민할 때도, 또 인사동으로 가는 길 내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옛 여인에 대한 미련이나 그리움 따위는 단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정말 이렇게까지 간사한 것이었구나.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고, 느꼈다 해도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벼운 발걸음과 환한 웃음으로 드디어 그 "예쁜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녀를 보자마자, 생각했던 것보다 예뻐서 우선 너무 놀랐습니다. 한눈에 반한 걸 티 내지 않으려고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었죠. 각자 소개도 받고, 자연스레 그녀 이름도 알게 되고, 술자리 분위기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술자리를 하고 있던 무리에는 그녀를 포함해 다른 남자들도 세 명이 있었습니다. 제게 연락 준 친구와 또 그의 다른 친구들이었죠. 수컷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다른 수컷들도 혹시 그녀에게 관심이 있거나 하진 않는지 면밀히 경계를 하며 전장을 살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제가 아는 젊은 이성들의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늘이 보우하사, 알고 보니 그들 네 명은 문중 장학회로 연이 맺어진, 죄다 같은 성씨 같은 본관에, 넓게 보면 친척 오빠들인 셈이었죠. 손 안 대고 코 풀기요, 싸우지도 않고 승리하는 말 그대로 무혈 입성한 셈이었습니다. 게다가 세 오빠들은 어떻게든 나와 그녀를 맺어주려고 계속 서포트를 했었고, 예상치 못한 아군들의 열화와 같은 지원으로 그녀와 나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날 저녁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늦은 밤까지 자리를 함께 했고, 만나고 돌아온 이후에는 제발 다음 날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친구를 졸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도 또 만났고 역사적인 우리의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셈이죠. 결국 그때의 그 "예쁜 여자"는 감사하게도 지금의 제 아내가 되어 벌써 20년째 제 옆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살면서 마음이 쉽게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일관성 없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라를 배신할 정도나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게 아니라면, 그것도 어쩌면 사람의 귀여운 본성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이나 미처 몰랐던 세계에 눈이 뜨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고백하자면 "예쁘다"던 친구의 말을 당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감사하게도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자취방에서 궁상 떨던 제게 전화를 걸어준 그 친구에게도, 손바닥 뒤집히듯 쉽게 바뀌었던 그때의 제 변덕스런 마음에도 너무도 감사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As easy as turning Over a One's Hand : A Korean Proverb About Life's Sudden Changes
The Korean proverb "손바닥 뒤집기가 쉽다" (literally "turning over a palm is easy") captures two essential truths about human nature. While it describes something effortlessly simple, it also reflects the fickle, changeable nature of the human heart. In Korean culture, this saying often carries a subtle criticism of inconsistency, yet this personal essay transforms it into a celebration of life's unexpected possibilities.
The author shares a deeply personal story from decades ago, when he was nursing a broken heart after a brief workplace romance ended abruptly. For a week, he wallowed in self-pity, unable to eat properly or engage with the world. Then came a single phone call from a college friend inviting him out to meet "a pretty girl." In that instant, his entire emotional landscape shifted as dramatically as turning over a palm.
The narrative unfolds with remarkable honesty and humor, chronicling how quickly the author's despair transformed into excitement and anticipation. By evening, he had bought new clothes, forgotten his former heartbreak entirely, and was on his way to meet this mysterious woman. What follows is a delightfully unexpected twist: the three other men at the gathering turned out to be her relatives from the same clan association, who enthusiastically supported the budding romance. The author describes this serendipitous situation as achieving "bloodless victory"—winning without having to fight. The essay captures both the almost embarrassing speed of this emotional transformation and the charming unpredictability of fate, as that evening led to twenty years of marriage.
Through this intimate story, the author explores broader themes about resilience, openness to change, and the unexpected ways life can pivot on seemingly insignificant moments. The essay suggests that our capacity for emotional transformation, while sometimes appearing shallow, might actually be a gift—keeping us open to new possibilities and preventing us from becoming trapped in past disappoint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