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실속이 없는 경우를 일컬어 사람들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개살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살구와 비슷한 생김새의 열매인데, 그 맛이 매우 시고 떫어서 정작 먹기에는 맛이 많이 떨어진다고도 합니다.
백방으로 열심히 직장을 알아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도 이제 다 많이 컸으니, 꼭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혹시나 한국에서 나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갈 생각까지 있었죠. 그러던 중 한 곳의 구인 공고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꽤 유망한 스타트업 회사였고, 수백억 대 투자를 여러 차례 받은 유니콘 기업이기도 했습니다. 구인란의 요구되는 자격 역시 제 경력과 잘 맞는 듯 보였고, 무엇보다 회사의 사업 영역이 매우 독보적이어서 비즈니스가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것 같았습니다. 지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채용 담당자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제 경험이 직무 요건과 잘 맞는 것 같아 좀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말이죠. 저 역시 회사를 더 알아보고 싶었기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고, 그로부터 두세 번 실무 담당자들과의 인터뷰가 내리 이어졌습니다.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회사의 호감도도 점점 올라갔죠.
저보다는 나이가 한참 어려 보였지만 사업에 대한 열정이나 시장을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친구들 역시 저를 좋게 보는 듯 느껴져서 실무 인터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속으로는 몇 가지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스타트업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직원 수도 수백 명이나 되며 매출 규모가 꽤 큰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들만의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매우 역동적인 조직에, 괜히 나이 든 사람이 합류해 적응도 못하고 물이나 흐리지 않을지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었죠.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빠르게 돌아가는 스타트업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기러기 생활이었습니다. 어느덧 싱가포르에서 머문 지도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가족과 매우 가깝게 부대끼며 사는 게 오히려 편해져 버린 저는, 가끔 한국으로 출장을 가더라도 덩그러니 호텔에 머무는 게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죠. 그래서 요즈음의 저는 혼자 있는 것에 잘 적응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제 큰아이만 대학 간다고 독립했을 뿐, 아직 둘째와 셋째는 중고등학생이어서, 제가 한국으로 가게 되더라도 아내는 여기 남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었거든요. 한국 포지션이다 보니 합격한다면 당장 한국으로 들어갈 판이었고, 저는 꼼짝없이 기러기를 하게 될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마지막 대표 인터뷰가 잡히고 나서 더 고민하게 됐던 게, 반드시 대면 면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어서 그동안 실무 인터뷰들은 모두 원격으로 진행했었거든요.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채용이라는 것은 어떤 조직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을 잘 알기에, 대면 면접을 요구하는 담당자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비행기표를 직접 사서 면접을 보러 가는 것은, 그렇잖아도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없던 그 시절에는,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오랜 상의 끝에, 그래도 결국 한국으로 면접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러기 생활이 그렇게 외로워서 힘들다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만 하면 외로울 새도 없을 거야. 혼자 생활할 거면 차라리 어중간한 회사보다는 이런 빡센 회사가 더 맞겠어."
"최종 대표 면접이라면, 뭐 거의 된 것 아니겠어? 감사하게도 나를 뽑아주겠다는데 나도 이 정도 의지를 보여줘야지!"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끊고 서울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날짜에 대표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제 또래로 보이던 대표는 언변이 매우 좋았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꽤 오랫동안 서로 얘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인터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래도 속마음으로는 인터뷰가 큰 탈 없이 진행됐음에 안심이 됐었습니다. 솔직히 '설마 외국에 있는 사람 불러 놓고선 떨어뜨리기야 하겠어?'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갖고 있었죠.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달리 며칠 후 저는 안타깝게도 불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그간 찜찜했던 몇가지 것들이 제 머리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 회사들을 다닌 적이 없어 사실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 느꼈던 회사의 분위기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활력이 느껴지는 사무실이라기보다는 매우 고요하고, 자리의 직원들은 상당히 경직되어 보였습니다. 대표를 대하는 직원들의 모습들도 매우 조심하며 상당히 눈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대표와의 인터뷰 때 그와 나눴던 대화 역시 서로 이어가는 대화라기보다는 각자 할 말을 하는 형태의 대화로 느껴졌었거든요. 덩달아 SNS에서 본 회사에 대해 좋지 않던 평판들도 하나둘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큰 충격 없이 제 기억속에서 빨리 잊혀져 갔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저는 싱가포르의 한 회사에 오퍼를 받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지금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심상찮은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게 불합격을 선사했던 그 회사에 대한 기사였죠.
직원들의 급여가 몇 개월째 밀리고 있고, 견디다 못해 퇴사한 직원들이 체불된 임금을 지불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게다가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회사의 비즈니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하고요.
대표와 면접을 볼 때는 비즈니스 현황이며 미래 비전이 상당히 좋아 보였는데, 이거야 말로 말 그대로 빛좋은 개살구였나 봅니다. 만일 그때 합격했다면 지금 어땠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얘길 하니 하늘이 도왔다며 그 회사 안 가길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실은 바로 해야죠.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것이죠. 하하.
"Bitjoeun gaesalgu" (빛좋은 개살구) literally means "a pretty wild apricot" – something that looks appealing on the outside but lacks substance within. Wild apricots resemble regular apricots but taste terribly sour and bitter, making them inedible despite their attractive appearance.
In this essay, the writer recounts a harrowing job-hunting experience with a seemingly promising unicorn startup. After multiple successful interviews and even flying from Singapore to Seoul for a final meeting, he faced rejection.
Months later, news broke that the company was failing, with employees protesting over months of unpaid wages.
What initially felt like a devastating loss turned out to be a narrow escape from a beautiful-looking disaster – a perfect example of "bitjoeun gaesal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