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재채기 같은 마음의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by 주저리

아침부터 그는 대뜸 ‘사랑해.’라고 연락을 해왔다. 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마자 사랑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마음의 크기는 대체 어느 정도인 것일까. 답장을 미룬 채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밤새 언뜻 비가 오는 것 같더니, 날이 흐려 해가 나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방에 비와 새벽의 냄새가 들이친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기에 웃었다. 자고 일어난 것뿐인데, 몇 밤을 못 본 것처럼 반가이 맞아주는 모습이 재미있다. 간식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먹는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발치에 앉아있다. 물만 먹고 냉장고 문을 닫으니 실망해서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제는 금요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극도로 피곤하여 불금은커녕 저녁을 먹자마자 잠이 들었다. 밤새 푹 자려고 일찍 잠에 든 것인데, 몸은 낮잠을 잤다고 인지했는지 새벽에 몇 번이나 깨었다. 그때마다 꿈을 꾸며 끙끙 댔다. 꽤 잠을 설쳤던 것 같은데, 일찍 잠자리에 든 탓에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몸은 생각보다 가뿐하고 하루가 길 것 같다는 생각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랑해’라는 말에 답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아지를 안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벌써 여덟 시이지만, 여전히 해는 보이지 않고 세상만 어슴푸레 밝아졌다.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주민들이 보인다. 작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몇 강아지와 인사를 했다. 주말 아침에 집을 나서서 돌아다니면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지에 가면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곤 하니, 꼭 어디 멀리로 가야 할 것만 같다. 또는 근사한 아침을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캐리어를 끌고 아주 먼 도시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차피 주말인데, 그래도 괜찮지 않나.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를 놓아주자 거실 귀퉁이에 놓인 물그릇으로 달려가 물을 마신다. 강아지가 물 먹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즐겁다. 혀 뒷면으로 시원하게 물을 퍼 올리는 소리, 물이 찰랑이는 소리, 꿀꺽하고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사랑해.”하고 강아지에게 말하고는 정수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었다. 그녀를 알고 만나게 된 이상, 끔찍할 정도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불가항력이다.


시리얼도 한 그릇 먹었으니 이제 그의 연락에 답장을 해야만 한다. 그가 아침나절부터 대뜸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에는 또한 그럴듯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나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것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흘러넘치는 마음을 담지 못하고 기침하듯 사랑을 외친 것이 언제더라. 아니, 그런 적이 있기는 했던가. 역시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 이제는 정말로 답을 해야겠다.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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