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끝내는 오늘 아침,
문밖을 나서는 길에 저는
당신의 처지는 어떠하신지
대꾸 없는 안부를 올해도 묻습니다.
선명하게 벌어진 이 계절의 균열을
당신은 외롭지 않게 건너고 계십니까.
또 한 번의 여름을 탕진하는 그 길에
당신의 곁에는 누가 또 살아남았습니까.
당신의 그 때묻은 손을 붙잡고
환절기를 동행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물크러진 농양 위에 기꺼이 입맞추며
매스꺼운 체취와 품성을 견디고
그 무익한 설교까지 기꺼이 버티며
당신을 받잡고 길을 가는 자가
아직 곁에 한두 명은 남아 있습니까.
또 한 철을 머물다 가는 제 짧은 근황은 이러합니다.
길고 긴 비구름 아래를 빠져나오는 동안 저는
질기던 관계의 사슬 몇 개를 기어코 잘라내었고
절절 끓는 폭염에 드러누워
몇 개의 허약한 우정이 허망히 시들어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수많은 희소식을 기록하였지만
굳이 들려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꼭, 전하고픈 저는 안부는
조금 더 다정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진단된
저의 종합건강검진 결과지로 갈음해 두겠습니다.
폭염과 폭우의 고문과 회유에도
저는 여름을 좋아한다 발설한 적 없습니다.
매년 더워지는 대기권에 빌붙은 처지에
호시절의 전향을 거부한 사상범이 되어
나는 내일 모든 것을 남겨 둔 채
다음 계절로 추방됩니다.
철조망을 넘는 나체의 밀입국자처럼
오직 허락된 백 근짜리 맨몸뚱이 하나만 쥐고
어김없이 벌어진 이 환절의 사건을 건너
제5의 계절로 망명을 요청할 것입니다.
여름이 끝나는 오늘,
이 마지막 기회를 붙들고,
숨이 붙은 것들은 무엇이든
할 일이 또 많아지는 때가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녹슨 왕년을 꼭 쥐고 앉아
거기서 한 계절 더 죽는 것 말고
또 어떤 소명이 남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