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티브 Antibes Mar 16. 2021

프랑스생활 이야기#2 그 순간을 산다는 것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순간에 몰입하여 오로지 그 순간만을 기억하며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프랑스에서 살면서는 한국이 냉장고 소음처럼 늘 백그라운드에 배경음악으로 깔려있었던 것 같다. 장소에 상관없이 그 순간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거에의 회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러나 정작 만끽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순간인데, 순간에 몰입하기란 왜 그렇게 어려운지. 꿈꿔왔던 일을 달성하고 나서, 또 하염없이 몰려오는 허탈함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목표 아니 또 다른 나날들이 앞에 쭉 늘어서 있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남부에서의 삶은 좀 더 자연친화적이며, 좀 더 그 순간에 다가선 그런 나날들이 아니었나 싶다. 

 Place de Gaulle 한귀퉁이 까페에서의 차한잔, 올드타운 입구의 빵가게에서 빵 고르는 재미, Le Vauban에서의 나름 우아한 식사, 해변 성곽을 따라 걷는 산책...정말 시시콜콜한 소소한 일들이 어쩌면 가장 그리운 일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상의 소음들이 늘 머리 한켠에 자리잡아 스트리밍되는 되어 일상의 소소함을 제대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프랑스로 이주하기 전엔 바게뜨의 풍미를 알지 못했다. 이렇게 딱딱한 빵을 구지 왜 돈을 주고 사먹지? 별다른 맛도 없고 그냥 밀가루 덩어리의 변신인 뿐인 것을...참 직접 몸소 겪어보지 않고 판단하기는 언제나 쉬운 것을...


그러나, 앙티브 올드타운 입구의 boulangerie에서 바게뜨를 사다가, 집까지 가는 동안, 입도 심심하고 배도 출출한 날엔 바게뜨를 조금씩 뜯어 먹으며 걷곤 했었는데 이내 바게뜨 하나를 다 섭취하시고 다시 그 가게로 돌아가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떤 날은 애써 돌아갔으나 바게뜨가 다 떨어져 없는 날도 있었는데 그 허탈함이란. 바게뜨가 모라고 한국의 편리한 생활 급 소환하시면서 서럽기까지 한 날도 있었다. 서서히 바게뜨에 중독된 나를 문득 어느날 발견하게 되었는 겉은 딱딱하나 속은 또 말랑말랑한 바게뜨의 묘한 매력에 눈뜨게 되었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누구나 장금이가 될 수 있단 걸 배웠달까? ㅎㅎ그 때 그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바게뜨를 아직 한국에선 찾지 못했다. 전국 빵집을 다 돌아다닌 것도 아니자만...도쿄 한 가게에서 무심코 맛 본 바게뜨가 그나마 좀 유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소 적어둘걸...


   [아직도 이 가게가 있을까. Place de Gaulle에서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던 boulangerie. 이 가게 바게뜨가 다른 가게보다 더 맛났다.]


         [다 먹어보고 올걸. 늘 먹던것만 찾아먹었었는지 지금은 왜 그랬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쁜 일상에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흡입의 식사가 아닌 빵내음을 맡으며 빵의 속살과도 대화하는 그런 식사가 그립다. 물론 한국에서도 맘만 먹으면, 가능하겠지만, 모랄까 도시의 향연 속에, 바쁜 일상 속에 그런 식사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조차 망각하고 어느 순간 생명의 연장을 위한 식사를 하고 있는, Netflix가 상대인 식사를 하고 있는, 뉴스거리들을 반찬으로 식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가 많다. 발견이라도 하면 다행인 걸. 


여러 프랑스 남부의 아기자기 한 도시들, 앙티브 해변, 니스 해변, 올드타운의 성벽, 그리운 것은 셀 수 없이도 많지만, 각종 빵, 이름도 기억하긴 힘든 각종 치즈, 그리고 늘 생의 한 번뿐인 선택인 것 마냥 고르기 어려웠던 와인...그런 소소한 먹거리들이 더욱 그리운 날이다. 




이전 01화 프랑스생활 이야기#1 - 지중해 마을에 살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