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TGV가 멈추는 순간,
앙티브의 시간이 다시 흐른다.
바람이 흔들던 기억의 필름,
올드타운의 골목에서 천천히 되감긴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선 위에,
나도 살포시 포개진다.
지중해의 푸른빛 속에 뿌려진 오브제처럼,
시간을 잊은 듯.
조각조각 밀려드는 파도 소리,
중세 돌길을 덮는 우리의 그림자들,
잊힌 꽃과 사라진 이야기의 숨결이
도자기 매미와 무당벌레 와 함께
그 길 위에 살아 숨신다.
피카소의 흔적이 스며든 길목에서
바람이 내 발끝을 감싸며 속삭인다.
그 음성, 오래된 친구의 인사 같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을 당긴다.
어느새 옛 집의 창가.
아장아장 아이 웃음소리가
기억을 타고 흩날리며,
촉촉해진 눈가로,
가슴 깊이 새겨진 잔상을 노래한다.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고
조각상처럼 굳어 섰다.
바다 끝에 걸터앉은 노마드의 시선,
그 너머엔 피어오르는 이야기들이
물결 속에 잠기고 흩어진다.
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비행운,
영원의 시간을 가로지른 채 희미하게 사라지고,
우리도 조용한 노마드로 앉아
잊힌 순간들을 가슴으로 노래한다.
앙티브의 밤,
별빛 이슬이 흐르는 창가에서,
바람은 속삭인다.
“우리는 떠 도는 자들이라,
그러나, 지나간 순간들은
마음 속에 영원히 물결치는
밀푀유(Mille-feuille)처럼 차곡차곡 쌓이는거야“
P.S. 06600은 프랑스 앙티브의 우편번호입니다.
프랑스 사는 동안 가장 많이 쓰고 읽은 숫자의 조합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