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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Dec 08. 2024

1000개의 촛불


먼 이국의 대지 위,
바람은 낯선 음율로 속삭이고
햇살도 숨어버린 무명의 자리
나는 흔들리던 갈대처럼,
기대와 두려움의 파도를 넘었네


니스 공항에 내린 너,

먼 항로를 건너온 별빛,

짐가방 위로 낮게 떠다니는 소망이었지


네가 천천히 걸어오던 순간,

긴 심해에서 눈을 뜬 진주가

처음 속삭이는 빛처럼

나의 공허에 닿아

가득 채웠네


그 눈빛,

흔들림 없는 등불처럼

내 모든 길을 밝혔지


앙티브의 밤,

너의 발소리는

어둠 속 찬란히 타오르는

천 개의 촛불처럼 퍼져나가


네 속삭임은

낡은 벽돌 하나하나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고


너의 온기가 머문 빈 방은
우리의 꿈을 안은 요람처럼,

시간의 흔적조차 잊었네


새벽의 첫 울음,

작은 손이 세상을 움켜쥐던 그날,

우리 아이의 울음은 찬란한 새벽의 종소리로

이 땅을 깨웠고,


그 순간 나는 알았지

너와 내가 흐르던 두 개의 강이

더 큰 강으로 이어졌음을


장모님의 미소,

안도의 숨결이 작은 세상을 축복하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스며든 사랑은

집 안 구석구석 남아

멀리서도 우리를 감싸겠다 약속했네


그러나 이별의 날,

장모님이 떠나던 날,

너의 온몸으로 부르짖는 흐느낌은
얼어붙은 겨울의 나목처럼 떨렸고,


그 떨림을 내 품에 새기며

나는 깨달았지

결코 나는 너를 떠날 수 없음을


너와 함께 만든 작은 세계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삶을 배워갔네


너와 함께한 모든 날들,

너의 손길이 닿은 이 땅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아


조용히 매일 읊조리네

'나와 함께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Je t'aime




작가 주:

오래 전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때의 상황을

(올해 초 다시 그 곳에 방문했을 때) 추억하며

쓴 시입니다.

제가 먼저 이주하고 와이프가 뒤따라 왔었습니다.


앙티브 올드타운의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소박하지만 시간의 흔적이 깊은 영성을 자아냅니다








앙티브 올드타운과 해변 성벽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피카소 박물관 뒷편 정경입니다





올해 초 새로 단장해 오픈한 앙티브 해변 성곽 끝 쪽에 위치한 '시인들의 정원' 정경입니다





'시인들의 정원'을 알리는 푯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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