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과기대에서 사역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중국 연변과기대에서 교수로 있지만 자비량 선교사입니다.
개인 후원통장으로 후원금이 들어오면 그것을 월급 명목으로 받아 사역과 생활을 합니다.
그 해에는 후원금이 안 들어와서 후원계좌는 마이너스가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우리 가족의 후원통장은 잔고가 0원이지만 행정상 월급을 안 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매 달 월급을 가불형식으로 받고 있어서 후원금 계좌는 마이너스가 된 상태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겨울이 춥다 보니 긴 겨울 방학을 보냅니다.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한국이나 미국으로 나가십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 나갈 경비도 없어 길고 추운 겨울을 연길에서 보냅니다.
그 해 겨울은 학교 측에서 경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학생들을 기숙사에서 내 보내고 학교식당도 문을 닫고 행정직원들까지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거이 대부분의 외국교직원들은 한국으로 미국으로 긴 방학을 보내기 위해 떠났습니다.
학교 가족기숙사에 남아있는 교직원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싱글직원 몇 분과 4,5 가정.
남아있는 이 가정들도 저희와 같은 형편이라 중국을 떠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저는 남편에게 옆집 김교수님 가정도 없어 돈을 빌려 쓸 수도 없으니 3개월 동안 지낼 생활비를 미리 가불 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통장이 마이너스인데 어떻게 가불을 하냐며 믿음으로 살자고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지만 믿음으로 살자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건 믿음으로 산 것이 아닌가?...
학교 재정부에서는 행정처 문을 닫으니 3개월 동안 재정이 필요한 사람은 가불신청하라는 통지를 했지만 저희는 그 기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12월 월급으로 받은 2천여 원으로 아이들 학비와 레슨비, 아줌마 월급, 공과금 등... 모든 것을 지불하고 3백여 원정도 남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받던 레슨을 모두 끊고 아줌마도 3개월 동안 방학하시라 하고 모든 지출을 정지시키고 나니 정말 아무 할 일이 없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11월에 김장은 해 논 것이 있어 그나마 김치는 먹을 수 있는데 쌀도 거이 바닥이 나고 냉장고도 비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3백여 원으로 쌀 사고 시장 두어 번 보면 끝나는 돈입니다. 3개월을 우리 가족이 어떻게 굶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조교수님 가정이 한 학기 안식년을 하기로 갑자기 결정했다면서 떠나기 전에 집에 있는 음식들을 정리해야 하니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 쌀 50 근짜리 2자루... 그 외에도 냉장고 음식들, 상온저장식품들... 택시를 불러 가져와야 할 만큼 많은 양이었습니다.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쌀 100근이면 우리 가족만 먹으니 3개월은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일 김치로 만든 반찬인 김칫국, 김치전,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하루하루를 이렇게 초라한 식탁을 대하며 지냈습니다. 과일, 생선, 고기는 꿈도 꿀도 없습니다.
과일이 먹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과일이 먹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이 과일을 사들고 옵니다. "생선도 좀 먹고 싶은데요" 하니까 한교수님 댁에서 누가 북조선 생선을 한 궤짝 가져왔다며 생선을 나눠먹자 합니다.
설 명절이 가까이 옵니다. 가족 기숙사에 남아 있는 가정도 몇 가정 안되는데 각자 설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설을 보내야 하는데요, 하지만 설을 보내려면 음식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대량음식을...ㅠㅠ
설을 우리 집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설날이 가까이 오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 음식을 준비할 돈이 없다고 다른 가정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 설 명절에 음식을 해야 하는데 어떡하죠?...ㅠㅠ"
설날 이틀 앞두고 우리 교직원도 아니고 한국사람도 아닌, 그동안 알고 지내던 조선족 한 분이 설 인사 왔다며 소고기 10근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중국에서 10여 년을 살며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날 오후에 또 다른 조선족 친구가 과일을 종류별로 박스로 사가지고 와서는 들어오지도 않고 주고 갑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이 소고기로 떡국 끓일 육수를 내고 남은 고기로 불고기 양념을 해서 재워놓으니 다른 가정에서 떡국 끓일 떡을 사 오겠다 하고 다른 가정에서는 잡채를 해오겠다, 전을 부치겠다 합니다. 과일도 풍성하니 이렇게 해서 푸짐한 설을 보냈습니다.
이 후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며 이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용케도 긴 겨울방학을 버티고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그때 당시 남편이 월급으로 받는 2,4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3백여 원으로 3개월 가까이 살았으니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3개월 동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생활비는 안 주시고 단지 우리 가족이 생존하게끔만 하신 거, 3개월 동안 마음조리며 살게 하신 거, 하루하루 초라한 식탁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궁색한 살림... 이런 것들로 저는 하나님께 삐져 있었습니다.
3월이 시작되자 학교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학생들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공적인 일로 은행에 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려 하는데 은행직원이 왜 입금된 돈을 찾지 않냐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물어보니 지난 12월 말쯤 미화 600불이 입금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3개월 생활비가. 그것도 우리가 가불 하지 않고 3개월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기도를 시작한 그 시점에 그 돈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 삐져있었던 제 믿음 없음이...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얼마나 완전하신 분이신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저는 이제야 배웠습니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장된 게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법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을.
저는 이렇게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