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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May 20. 2019

히어로가 물러나야 할 때- 아버지를 위한 변명

Coldplay - Something Just Like This


| 히어로를 위한 변명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거나, 거미줄을 쏘면서 악당을 물리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의 히어로일 때가 있다. 우연히 초자연적 능력을 접하게 되거나 외계에서 혹은 신계에서 물려받은 능력이 없어도 각자가 지닌 하찮은 재능만으로도 히어로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글이 슈퍼 히어로나 영웅에 대한 이야기아니다. 물론 콜드플레이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혹자는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아빠와 아들, 아빠와 딸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는 자식에게 히어로 이상의 존재일 때가 있다. 생명을 만들어 낸 조물주(?)로서의 역할 만으로도 신성하기 그지없긴 하지만, 그보다도 아주 잠깐이나마 아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영웅 대우를 해주는, 말 그대로 절대적 존재로서 군림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고하기 시작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그러니까 영장류로서 성장하는 초기 단계에 아주 잠시 동안의 일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얼기설기 엮어서 얘기해 줘도, 과락을 겨우 면한 과목에서 주워들은 내용을 그럴싸하게 꾸며서 얘기해도, 아이들 자전거 하나쯤 번쩍 들어 올려도 아빠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고, 아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그래서 어쩌면 외계인이 쳐들어와도 아빠만 있으면 지켜줄 것 같은 그런 존재일 때가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빠는 더 이상 그런 히어로와 같은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쩌면 평균 이하의 남자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 비록 아빠 스스로 영웅을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대우에 은근 자긍심이 생기고 한편으로 뿌듯하지 않았던 바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러한 대접받음을 스스로 내려놓게 되는 때와 조우하게 된다.  


| '나의 콜드플레이'에서 '너의 콜드플레이'로


    사실 그런 본격적인 일이 벌어지기 전에 아빠는 조만간 그때가 닥칠 것이란 징후를 먼저 알아채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순간은 소소하게 다가온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익숙한 듯 낯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열 살짜리 아들놈이 볼륨을 키우며 물었다.


    - 아빠, 콜드플레이 좋아하시죠?


    - 그럼. 당연하지. 지난번에 아빠 다쳐서 힘들 때, 콜드플레이 음악 들으면서 힘냈잖아. 그런데 그건 왜?


    - 그냥요. 오웬도 좋아한대요.


    오웬은 어린 나이에 낯선 이국 생활을 시작한 아들이 적응으로 힘들어할 때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친구다. 오웬을 팔았지만 자기도 좋다는 표현이다. 짐짓 모른 체하며 아빠는 장난처럼 댓구한다.


    - 그래? 오웬이 음악을 좀 아는구나?


    하지만 아들은 아빠의 농을 무시하고 자기 말을 뱉는다.


    - 이 노래도, 콜드플레이잖아요.


    그런데 처음 듣는 곡이다. 음악을 일일이 찾아서 듣는 경향이 아닌 편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생소다.


    - 이게 콜드플레이라고?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크리스 같긴 하네.


    - 이 노랜 어때요? 난 이 노래가 좋아요.


    아빠의 의중을 묻는 건,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빠가 좋아하는 걸 자기도 좋아한다는 단계를 넘어서 아빠가 좋아하든 말든 자기는 좋아한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빠가 좋아하는 아빠의 콜드플레이를 아들이 따라 들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아빠의 그것과 상관없이 아들의 콜드플레이가 등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해 보니 팝이나 대중가요는 이미 아이들이 먼저 접한 후 아빠가 따라가는 모양새가 된 지 오래였다. 그뿐인가 전자 제품이나 앱 사용법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요하는 문물에 있어서는 딸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지 오래라는 생각에 미쳤다.


    Something just like this에 대해서 별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나눈 후, 그날 밤 잠자리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모습과 이젠 모르는 걸 애들에게 배우는 아빠의 모습이 교차한다. 이제 인생의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 조연으로 비껴 앉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것은  주연과 조연이 전도되라는 시그널인 것이다.


| 아버지를 위한 변명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하나라도 더 느끼게 하주고 싶어서 많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던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운전 중에 팝송을 따라 부르지 않는다. 아빠가 팝송을 엉망으로 불다는 것이 들통날 것 같기 때문이다. 자막 없는 TV나 영화도 같이 보지 않는다. 아이들은 웃거나 인상을 쓰지만 아빠는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기 때문이다. 비단 팝송이나 영어라는 특수한 대상에 대한 얘기일 뿐이 아니다. 더 이상 아빠의 실체를 숨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재는 널려있다.


    이제는 달리기로도 이길 수 없고, 여행을 가도, 마트엘 가도 아빠는 가이드이자 짐꾼이며, 든든한 리더였지만, 이젠 아이들이 정보를 제공한다. 일정 계획은 아빠의 관심사에서 아이들의 관심사로 변경된다. 아빠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에서 이들이 관심 갖고 있는 분야로 여행지기 바뀐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사고의 외연은 끊임없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아빠가 보던 책의 일부를 들고 왔지만 어쩌면 아빠의 과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세계다. 아이들의 세계는 현재에서 미래와 닿아있는 반면 아빠의 세계는 과거에서 현재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빠의 세계로 아이들의 세계를 이끌어 왔을지 몰라도 그때가 지나면서 더 이상 아이들의 그것은 아빠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가역적 현상이다. 흐르는 물이 거슬러 흐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흐르는 것은 물뿐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아서 윗대에서 아랫대로, 과거에서 미래로, 옛것에서 새것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이치다. 더 이상 정보는 아빠를 통해 아이들에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아빠에게 이른다. 정보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인생의 한 마당에서 주연에서 조연으로 역할의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히어로는 슬쩍 자리를 내어주고 슬그머니 조명 밖으로 사리 져야 하는 그런 대목이다.


| 조연을 위한 변명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 정희성 詩 저문 강에 삽을 씻고 中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고 - 전도서 1장 4절 中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배역과 역할 다르겠지만, 주인공이 싫다고 발버둥 쳐도 내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나 또한 그 누구를 대신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스스로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 딱 한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게 된다. 물론 그 시작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에게 발생한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도 주연이었다. 내 뒤로 물러앉은 조연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빠에겐 영화 '셰인'의 주제가가 입에 달려있다. 아빠의 아버지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강하고 높은 산이었던 존재가 언제부턴가 보살펴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내 뒤에 앉아 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어린이였고, 누구나 청년이었으며, 누구나 그렇게 어른이 된다. 누구나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늙고, 그렇게 인생의,  시대의 조연으로 물러나게 된다. 세상은 그런 조연들의 힘으로 일궈져 왔고, 그것을 이어받아 세상을 다스릴 주연들은 또 언젠가  조연의 몫으로 세상에 기여할 것이다.


    그래 아빠는 실루엣처럼 아이들의 배경에 남을 때까지, 그들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그런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아간다.


Something just like this


    아들이 알려 준 노래 Something just like this는 정확히 말하면 콜드플레이의 정식 앨범 곡이라기보다는 2017년 초반 콜드플레이와 체인스모커(The chainsmokers)의 컬래버레이션에 의해 탄생한 곡이다.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고 쓰고 있지만 아마도 체인스모커의 첫 앨범에 수록되었다고 기억한다. (아님 말고) 콜드플레이는 종종 콘서트에서 이 곡을 선보이는데 지난번 한국을 찾았던 콜드플레이 A Head Full of Dreams 공연에서도 연주되었다.  


    가사는 연인에게서 슈퍼 히어로나 동화 속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항상 곁에서 의지하며 지낼 수 있는 평범한 삶, 바로 그런 걸 원한다는 내용이다. 아, 물론 아들은 Viva la Vida와 함께 지금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들어보기]


I've been reading books of old The legends and the myths
전설이나 신화 같은 그런 오래된 이야기를 읽어왔어
Achilles and his gold, Hercules and his gifts,

Spiderman's control And Batman with his fists

아킬레스와 그의 황금 이야기.
헤라클레스와 그의 선물(힘)에 관한 이야기.
스파이더맨의 능력, 배트맨과 그의 주먹
And clearly I don't see myself upon that list
그런데 분명한 건 그 목록에서 나를 찾아볼 순 없다는 거야
*She said Where'd you wanna go? How much you wanna risk?
그녀가 물었어,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거야?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싶은 건데?
I'm not looking for somebody With some superhuman gifts
난 어떤 초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게 아냐.
Some superhero, Some fairytale bliss
어떤 슈퍼히어로나 어떤 동화 속의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야
Just something I can turn to
난 그저 의지할 수 있는
Somebody I can kiss
입맞춤할 누군가를 찾고 있어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내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거야
Oh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난 바로 이런 걸 원해
Oh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야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난 바로 이런 걸 원해


I've been reading books of old The legends and the myths
오래된 이야기를 읽어왔어 전설이나 신화 같은 이야기 말이야.
The testaments they told, The moon and its eclipse
성경 이야기, 달과 월식
And Superman unrolls, A suit before he lifts
그리고 날아오르기 전 슈퍼맨은 망토를 펼치지
But I'm not the kind of person that it fits
근데 난 그런 게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


*Repeat

**Repeat


Oh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Oh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Oh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뱀발) 아들과의 콜드플레이에 대한 대화가 있었던 다음날,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 침대에 걸터 않아 끄적인 글이다. 문법이나 어법에 자신은 없지만 일단 여기에 옮겨 봤다.

Children think dad as the big man like a mountain. The one thing of the reason is what they think dad has know everything. So when they ask to him something which are want to know they expect that dad will respond  everything perfactly. As the children grow up, they realize that Dad is not such a big and perfect being as he thinks. It means if children doesn't expect something from dad, it is the time to leave from beside of father in order to become another bigman by themself. After that time, the father has to ask to his children to know about computer, smartphone and something like this. Now it is began the role is changed between dad and his son.


그런데 나조차도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어서 구글에 돌렸더니 아래와 같이 번역해 준다.

아이들은 아빠를 산처럼 큰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유 중 하나는 아빠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 그들은 아빠가 모든 것을 지혜롭게 대답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빠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크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서 어떤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옆에서 떠나서 스스로 다른 빅맨이 되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 후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컴퓨터, 스마트 폰 및 이와 유사한 것에 대해 알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빠와 아들 사이에서 역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은 이미지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형태의 소스로 저장되었다가 재생될 때 다시 그 공감각적 형태로 기억을 소환한다. 우리는 이름하여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고, 나에게 추억은 음악을 틀면 활성화되는 이미지 파일들로 저장되어 있다. '그 남자의 음악다방'에서는 음악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추억의 이미지를 통해 소시민적 삶의 단면을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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