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생은 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굶을 날이 올 줄 이야.
매일 공들여 올리던 블로그의 수입은 고작 몇 푼에 불과했고, 경력 짧은 초년생이 프리랜서로 일감을 따내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Z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몇 번 일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너무 멀다”, “상사가 까탈스럽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나는 그를 기다려줬고, 대신 우리는 도시를 옮겨 다녔다. 다낭에서 냐짱으로, 다시 호찌민으로.
번듯한 호텔에서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우리는 점점 위험한 동네의 초라한 숙소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겨우 호찌민에서 Z가 일자리를 얻으며 잠깐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사이 기계 고장으로 출금한 돈을 잃기도 하고, 교통 경찰은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해 우리는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았다. 그렇게 Z는 끝내 안정적인 수입을 얻지 못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과연 이 상황을 함께 버틸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꿈만 같던 베트남 여행이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둘 다 빈털터리가 됐고, 오토바이를 팔아 쫓기듯 향한 마지막 종착지 하노이에선 생라면만 먹고 며칠을 버틸 지경이었다. 맙소사.
배를 곯며 지내던 이 때, 이전 회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프리랜서 일 제안이었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구원받은 느낌마저 들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서럽게 밤을 새워 일했던 지난 날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 선배의 제안은 절묘한 타이밍의 구원의 손길이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시작하자 Z는 어쩐지 심술이 많아졌다. 내가 변했다며,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허기와 피로, 일단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우리는 자주 격렬하게 다투었다. 둘 다 처음의 행복감은 잊은 지 오래였다. 물가 싼 베트남에서 며칠을 배곯며 지낸다는 사실 또한 무척 자존심 상했다. ‘우리 불행은 언제 끝날까?’라는 의문이 잠들기 전마다 나를 괴롭혔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건 맞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단 생각을 했다. 그가 없이.
나는 일부 돈은 이미 과거의 계획대로 묶어 두어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수많은 다툼 끝에 그는 너무 고집스럽고 싸움에 있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사람이었다. 점점 그와 함께할 미래가 무거운 안개가 쌓인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가겠단 선택이 Z에게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나와 함께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걸 또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내 관광비자는 끝나갔고, 결국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지지고 볶더라도 한 명의 신분이라도 안전한 한국을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영 내키진 않았지만 그의 선택을 따랐다. 이 때는 한국행이 진정한 불행의 시발점이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