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온갖 핑계로 미루는 것은 가장 미련한 짓이다.
나의 지난 미련함.
나는 왜 너와 여유로운 커피 한 잔 나누지 못했을까?
어느 날은 스케줄이 바빠서, 어느 때는 몸이 안 좋아서, 또 어떤 날은 그냥 귀찮아서. 그리고 남은 대부분의 날들은 아마도 내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가 함께 따뜻하거나 혹은 시원한 무엇 하나 편하게 맞대지 못한 이유는 거진 나 때문일테지.
솔직히 때로 나와의 시간을 피했던 너에게도 조금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넘어갈게. 덕분에 내 용돈이 며칠을 더 연명했으니까.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고.
알다시피, 너처럼 대단한 선수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더없는 행운이자 행복이었어. 오해는 하지 마. 너만큼 대단한 선수와 작업한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다만, 같은 공간, 같은 옷, 같은 스케줄로 꽤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우리'로서 연결될 수 있었던 측면에서 보자면. 맞아, 넌 내가 꿈꾸던 방식으로 함께 한 내 첫 선수였어.
그래서일까. 너를 처음 만나기 전, 나는 세상의 모든 긴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롯데타워 몇 개는 세우고도 남을 지경이었고. 말도 마, 첫 만남 이후로는 한동안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정신 못 차린 날들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럼에도 3년을 보냈다니, 신기하지? 나도 내가 신통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아세웠던 걸까?
너를 만나는 모든 순간 나를 지우겠다고 그렇게 노력하면서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정작 네 앞에서 나는 너보다 나를 더 많이 우선했던 것 같아. 나와의 시간이, 나와의 대화가 반드시 너에게 무언갈 남겨야 한다는 빌어먹을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지. 대화가 끊겨선 안 됐고, 하는 것 없이 가만히 시간만 보내는 것(밖에서 우리를 보기에)은 더더욱 참을 수 없었어.
그래서 그저 향긋한 차, 쌉쌀한 커피 한 잔 정도로 잠시 쉬고 싶어 하는 너를. 나는 충분히 보고도 모른 체 한 건 아닐까. 니가 진짜 원하는 것보다 내가, 내 욕심이, 더 가치롭다고 여긴 건 아닐까. 맞아, 분명 그랬던 거야.
돌이킨 이 내 모습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이유는, 또한 그 모든 걸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나를 존재케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당연하잖아. 지금 너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세상 유일한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고. 더구나 너에겐 너를 가장 빛나게 할 머리와 몸, 더하기 마음이 있는데. 그런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하는 것보다 더 가치로울게, 도대체 뭐가 있겠어.
그런데도 너보다 나를 앞세우는 미련함이라니. 미쳤지, 미쳤어. 이토록 창피할 수가 없는 거지. 불길함이 밀려와. 앞으로 이곳에서 너에게 사과할 일들이 잔뜩 쌓여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어. 어쩐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또 뭘 어쩌겠어.
우선은 지금 하던 사과, 아니 지금 하던 이야기부터 잘 마무리해 볼게.
첫째. 매 순간 너를 우선하지 못한 것, 그리고 언제나 오롯이 너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지 못한 것 포함, 네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자리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또 고마워. 내가 앞으로 만나는 선수들은 보다 값진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될 테니까. 모두 네 덕분이야.
둘째. 이제는 자신 있게 너와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어. 당장 눈에 보여지는 그 어떤 대단한 코칭이나 훈련, 또 성과보다도 네가 원하는 것으로써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면, 너와 내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가치롭다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거든. 너로 가득한 시간보다 더 의미있는 게 있을 리 없잖아. 찬란한 넌, 위대한 선수니까.
셋째. 당연하게도 내가 아니어도 괜찮아. 누구와 함께든 너는 그 시간 안에서 너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얻고, 채워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거 하나만.
그 시간들을 자꾸 뒤로 미루지 말고, 우리 꼭 챙기자.
고된 스케줄로 방에 돌아오면 쓰러지기 바쁘겠지만.
시원한 커피나 차 한 잔, 상쾌한 밤공기로의 산책, 마음에 닿는 귓속의 음악, 맛있는 음식과 수고를 날려줄 알코올 몇 모금,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드라마,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대화. 그리고 또 그게 뭐든 간에.
좋아하는 누군가와 혹은 아무도 방해 못할 너만의 시간으로써. 우리 챙기자.
그리고 넷째. 우리도 언제, 다시, 꼭, 또 한 번 마주하자. 온전히 니가 원하는 걸로다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혹은 필요한 시간은 무엇일까.
그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나를 얼마나, 어떻게 이롭게 할까.
가장 시기적절한 실행방법을 찾는다. (혹여, 지금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떼쓰지 마라. 그런대로의 차선책을 찾아보자. 너의 아이디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기발하다.)
실행한다. (차선책이라면, 살짝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얻고자 함은 족히 뽑아낼 만큼, 너는 충분히 창의롭고 출중할 것이다.)
더 궁금한 것은 우리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