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애초에 살아남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잖아!
3월. 아직은 겨울의 쌀쌀함을 녹이는 캠프도 어느덧 중반. 충분히 지칠 법도 하건만, 너는 분명 너를 더욱 다그치며 오로지 더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혈안 되어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니. 오늘은 내가 너를 좀 멈춰 세워야겠어.
이 시기가 되면 언제나 너를 맴도는 단어 몇 개. '마지막', '기회' 그리고 '경쟁', '생존'. (이제 첫 발을 내딛는 너라면 '시작'이란 단어도 필요하겠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단어들은 늘 네 등에 업혀 너를 무겁게 짓누르곤 했더랬지. 지금의 너도 '마지막 기회'를 외치며 자신을 힘써 추스르고,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되뇌이며 너의 생과 사를 그곳에 찰싹 붙여놓고 있을까?
좋아. 너만 괜찮다면. 언제나 네가 '너'이니까.
무엇이 되었든 너의 두 눈을 번뜩이게, 가슴을 웅장하게, 또 너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고취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난 아주 귀하고도 감사하게 여기니까.
그럼에도 오늘은 어느 한 구절*을 소개할까 해.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내용이었는데 글쎄, 얼마 전에는 불현듯 니가 떠오르는 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너와 나눌 수밖에.
나는 제니퍼 캐프리아티가 14살 때 했던 인터뷰를 가장 좋아한다. 당시 그녀는 톱클래스의 대회에서 출중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어떤 기자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대결할 때 긴장되지 않냐고 물었다. 제니퍼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특별한 혜택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작 14살의 나이에 그런 큰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면 주위로부터의 기대가 분명 부담스러울 텐데요? "
두렵다는 자백을 원하는 기자의 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니퍼의 대답은 단순하고 천진난만했으며, 내가 보기엔 순수한 self 2의 발현이었다.
"테니스가 두렵다면 대체 왜 하겠어요!"
그녀는 외쳤다. 기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너는 어때. 두렵니? 아니면, 여전히 재밌니?
평소라면 이쯤에서 멈춰야 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이야기를 좀 할게. 살짝 두렵기도 하지만, 적어도 여기선 나도 내가 원래 재밌어하던 거, 그냥 재밌게만 해보려고. 사실, 나도 꽤나 말이 많은 편이거든.
나는 이 시기에 나타나는 어떤 류의 것들을 '캠프의 유령'이라고 불러. 다른 뜻은 없어. 늘 이맘때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또 괜시리 '이것, 저것'으로 퉁치기엔 하나가 아니라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매번 다 쓰자니 귀찮아서. 그 뿐이야.
그리고 이번 캠프에도 유령은 어김없이 나타난 것 같아.
캠프의 유령, 「마지막, 기회, 경쟁, 그리고 생존. 또 그러하므로 모든 것들」
오늘도 네 주위에서 맴돌고 있을 요 캠프의 유령은 어디서 나타난 녀석일까. 너에게서 나온 걸까? 아니면 제니퍼가 기자에게 요구받았던 것처럼 너 또한 누군가로부터 그러하길 요구당한 걸까.
오늘도 네 주위를 아장아장 맴돌았을 요 캠프의 유령은 왜 너에게 나타난 걸까? 겁주려고? 무서움, 두려움? 음. 그랬다면 니가 진작에 십자가든, 닭피든, 부적이든, 뭐든 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네가 그 유령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처럼, 때로는 마치 도움을 받으려는 것으로까지 보였어. 캠프의 유령을 굳이 다정히 곁에 둠으로써 네가 얻는 유익은 무엇이었을까.
절박함? 간절함? 그로 인해 다하게 되는 최선의 노력? 그러므로 남김 없을 미련과 후회? 그것으로 뒤따를 성장과 성과? 점점 높아지는 주위의 평가 더하기, 나의 값어치, 몸값. 얄팍한 내 머리로는 요정도.
잠깐 떠올린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요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네 그려. 너에게서 난 것이든, 세상으로부터 요구받은 것이든 결국 캠프의 유령이 가져다주는 것들은 우리에게 심히 좋은 것들이네. 그렇네. 유령이 착하네.
그러니까 나는 지금부터 니가 유령들을 내버리길 바라. 정확히는 이제 슬슬 유령들을 내벗기는 연습을 하길 바라. 캠프의 유령은 여기까지, 이젠 진짜 '너'를 데려올 시간이야.
그래서 또다시 던지는 질문.
어때, 너는 지금 어때? 두렵니? 아니면. 여전히 야구가 재밌니?
아마도 내가 널 바로 보고 있다면, 별다른 변수가 없었다면 너는 지금 분명 캠프의 유령을 등에 업고도 재밌다고 하겠지. 100%는 아닐지 언정, 적어도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그러니 재밌는 편에 가깝다 말하겠지. 아직은 무대에 오르기 전이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고픈 건, 니가 곧 무대에 올랐을 때야.
비록 캠프의 유령이 지금의 너에게 어쩌면 반드시 필요하고, 또 그것이 주는 유익이 절대적이라 해도. 그라운드 위, 네 무대에 우뚝 섰을 때. 니가 너의 퍼포먼스를 한껏 뽐낼 그때. 그때의 너는 유령들이 아닌, 네가 야구에서 그토록 진정으로 느껴온 진짜 '너'로만 가득하기를 바라.
진짜 너. 그게 무엇인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감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이건 확실하지.
진짜 ‘너’는,
두렵기보다 그저 신나고. 간절하기보다 그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진짜 '너'는,
제아무리 잘난 캠프의 유령이라도, 그에 비할 바 없이 너다운 무대를 펼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라는 것에. 너다운 무대는 곧 모든 결과를 가릴 만큼 눈부시다는 데에. 딱히 셈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있는 내 전 재산을 걸지.
그러니까 이건 우리끼리만의 비밀. 아무도 몰래, 혼자서 혹은 속으로, 이제 슬슬 우리만의 연습을 시작하자.
캠프의 유령이 무대 위에서 빛날 진짜 너를 가리지 못하게 말이야. 이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캠프가 아닌 무대 위이니까. 그곳에 어떤 모습으로 오를 것인가, 그걸 준비하자고. 곧 리허설이 시작될 거야. 기억해. 여기까지 네가 흘려온 피땀눈물은 캠프를 위한 것이 아니야.
어떻게 준비하냐고? 알면서 뭘 새삼스레 물어. 그래, 그거야!
* Timothy gallwey. The inner game of Tennis, 2022
솔직히 우리에게 간절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오히려 너무 간절해서 탈 난 적이 더 많지 않았나?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때의 너는 전쟁에 나선 장수에 가까웠을까 아니면, 무대 위 주인공에 가까웠을까.
어느 쪽에 가까웠든 결코 네가 너 스스로에게 좋았다, 나빴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진 않았으리라.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그저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던지고, 잡고, 치고, 달리며 무척 즐거웠으리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 우리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