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원하는 게 거기 있을지도 몰라!
슬슬 하나, 둘 드러날 시간.
어떤 너는 계획대로 잘 가고 있다 여길 테고. 또 어떤 너는 계획과는 다르게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여길 테다. 그런데 지금 너는 어딜 향해 가는 중이더라?
넌, 어디로 가고 싶어?
우리에게는 언제고, 거대한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경험을 한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아니면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더럽게 운조차 따라주지 않아서. 이유야 어찌 됐건 간에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특히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내가 세웠던 수많은 목표와 계획들은 맛집 포스트잇마냥 너덜너덜 쌓여만 가다 끝내는 저기 남산 자물쇠들처럼 하나, 둘 잊혀지고 녹슬어만 갈 때, 나는 그럴 때마다 그곳으로 떠난다.
난, 여기로 가고 싶어.
몇 해 전, 내가 이수한 어느 프로그램에 서포터로 참여한 적이 있다. 주로,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사전 준비나 진행 과정을 돕는데 그중, 하나가 시연이다. 프로그램 강연자는 일본인 코치*(나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친, 훌륭한 코치 중 한 명이다)였고, 나에게 선수 역할(정확히는 피코치 역)을 부탁했다. 시연이 시작되고, 지금 내가 꿈꾸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는 코치의 질문에 나는 거침없이 '월드컵'을 꼽았다. 그리고 한일전으로 당신을 만나, 필드에서 당신과 악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 당신도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달라는 부탁(이미 몇몇 종목의 국가대표팀을 담당하며, 세계대회와 올림픽에 참가한 그에게)과 함께. 아, 그때는 나도 미친 패기가 있었더랬다.
사실 별생각 없었다. 진짜 코칭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포터로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뿐. 좋은 교보재가 되면 그뿐이렷다. 친분도 없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진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관성처럼 좋아하는 종목 중 하나를 꺼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내기엔 자칫 진정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으니 지금의 나에게 맞게 현실성을 한 숟갈 얹어 국가대표를 최종 목적지로 그렸다. 2002년을 생생히 보낸 세대로서 국가대표하면 월드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나만 그런가?
계속된 코치의 질문은 이랬다. '월드컵에 나가기 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죠?' , '그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또 어떤 일들이 필요하죠?'
나는 대충 떠오르는 대로(물론, 현장에서는 사뭇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 나름 연기를 해댔다) 대답했다. '팀을 맡아보지 않았을까요? 프로든, 실업이든, 성인팀을 맡아 아주 잘했겠죠? 종목은 크게 상관없는데, 그래도 팀스포츠였을 것 같아요.' , '아마 팀을 맡기 전에는 학교나 아카데미 같은 그룹에 있지 않았을까요? 역시 종목은 상관없구요.' , '그보다 전에는, 개인코칭을 많이 했을 거예요. 한 100명? 200명? 그쯤이면 코칭을 좀 잘하지 않을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뭐, 대강 이런 식이었다. 내 나름 최종 목적지까지의 여정, 시나리오를 그렸다. 시연은 무사히 끝났고, 나는 내가 만든 작업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날 바로 버렸다. 그때만 해도 훗날 내가 그곳으로 이리 자주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뭐라도 남겼어야 했건만. 그랬다면 이 밑에 첨부하여 글이 조금은 더 풍부해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남은 거라곤 내 머릿속 스틸 컷 뿐이다. 어쨌든.
그 후 나는 여러 선수들을 만났고, 열심히 코칭을 했다. 만나는 모든 선수들은 멋졌고, 나는 멋지지 못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코칭을 마친 거의 모든 날에 실패를 맛봐야 했으며, 송곳보다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다름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굳건히 지켜내야만 했다. 당장이라도 내 능력을 이실직고하고 선수를, 그룹을, 학교를, 팀을 떠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할 만큼. 때로, 저쪽에서 먼저 '그만'을 외칠 때면, 왠지 모를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나는 내가 코칭을 그만 둘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책상에 앉아 당일 비루했던 나의 코칭을 곱씹고 있는데, 무엇이 촉매제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몇 년 전의 저 시연이 문득 떠올랐다. 어렴풋한 기억이었으나, 나는 그날 내가 즉흥적으로 그렸던 몇몇 순간에 다시금 선명히 머물다 왔다. 물론, 개중 월드컵 한일전이 가장 큰 이벤트였겠으나, 나에게는 보다 평범하면서도 더욱 강렬한 곳이 있었다. 그곳의 나는 태극기가 왼팔에 새겨진 짙은 남흑색의 저지를 입고, 선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수들의 등에는 흰색으로 KOREA가 또렷이 박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저분한 책상에 퀭한 눈과 부시시한 얼굴로 꾸부정히 앉아 있었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 있었다. 국가대표 저지를 입은 미래의 내가 나의 과거에 와 있는 듯한 기분. 마치 미래의 내가 이미 내가 다 겪어온 일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지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가 내게 온 것인지, 내가 그에게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한 번 '그'에게 물어나 보자.
국가대표 코치인 '나'야, 지금 내가 뭘 해야 하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서 내가 거기까지 간 거냐고!
뭔가 번뜩이고, 이렇다 할 비법이 나오진 않았다. 미래의 '나'는 그저 국가대표 저지에 걸맞은 마음가짐과 행동, 자격을 지금부터 연습하라고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본을 먼저 내보이라고 말했다. 최대한의 기본, 그것은 결국 내가 여지껏 늘상 해왔거나 또는 이미 알고 있는 앞으로 해야 할 것들 뿐이었다.
나는 책상에 몸을 바로하여 하나씩 다시 시작했고, 그럼으로 나를 갉아먹던 생각과 시간들을 조금씩 지워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과정은 '확신'에 가까웠다.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미래의 내가 힘들어하는 지금의 나에게 주고 간 선물 같은.
시나리오가 조금 수정됐을 뿐, 내가 그렸던 미래의 나는 아직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꽤 많은 부분을 충분히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이 자주 떠났으면 좋겠어.
캠프를 떠나기 전, 니가 말했다. 이번에는 더 높이, 더 멀리 목표를 그리고 출발하겠다고. 또 네가 말했다. 너무 멀고 큰 목표보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목표로 그려가겠다고. 가깝든, 멀든, 높든, 낮든 너는 지금까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며, 또 어디까지 그렸을까.
결국 네가 그려냄으로써 이미 어딘가에 존재할 그곳으로 니가 자주 떠났으면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너'와 네가 좀 더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설사 지금 가는 길이 네가 바랐던 루트는 아닐지 몰라도, 실은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너만의 가장 빠른 길로 아주 잘 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될 테니. 나는 요즘도 가끔 그곳으로 떠나, 국가대표 저지를 입고 있는 나를 만난다.
* Tsuge Yoichiro(쯔게 요이치로), Field Flow(2016).
내가 바라는 어느 순간의 나를 떠올린다.
그곳은 언제이며, 나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가.
그곳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그곳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더 궁금한 것은 우리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