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겨울_네가 야구를 안 할 수 있길 바라.

나는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지.

by Juco


내가 무엇보다 슬펐던 건, 니가 너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었어.


무표정에 말도 없이, 혼자 다니며, 무서워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는 너라니. 맙소사, 그런 너를 내가 꼭 봐야 하는데. 그럼, 우린 한바탕 같이 웃을 수 있을 텐데.


몸은 몸대로, 상황은 상황대로, 또 그놈의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각각이 너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만 할 뿐이니, 어쩌면 니가 숨어버림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맘 편히 숨을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임한다는 것이 특히 우리에겐 정말 쉽지 않지. 마치 원치 않은 라스트 댄스랄까? 하고 싶은 것도, 남기고 싶지 않은 것도 아직 많은 우리가 벌써 마지막 춤을 춘다는 것은, 그리고 더욱이 그걸 나답게 추어낸다는 것은 그래, 결코 쉽지 않겠지.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즐거워야 해.




야구를 안 할 수 있어야,
야구를 할 수 있다.



혹시 기억할까. 이 개똥 같은 논리에 너는 참으로 진심을 담아 대답했었지. 그것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한 후에 말이야. 질문을 대하는 것부터 찾아낸 답까지 전부 너답다 할만했지.


왜일까, 너와의 대화를 마치고 문득 그때가 떠오른 건. 계속 들어볼래? 아마 낯선 이야기는 아닐 거야.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남들은 다 빨리들 가는데, 너만 느리게 가고 있다고. 어쩌면 아예 멈춰버렸거나 혹은 되려 퇴보하고 있을지도. 그리고 설사 사실이 아닐지라도 이런 기분들은 박탈감과 자격지심이 되어 너를 자꾸 움츠리게 만들 테고, 너는 뭔가 계획을 세워 바삐 움직이며 이겨내 보려고 하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효율이 더 떨어질 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최선을 다하고, 또 다했건만 몸상태는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고, 주변의 기대나 바람이 너무 과해서 혹은 너무 박하여 스스로 작아지다 못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 거기에 하릴없는, 네가 어찌 컨트롤할 수 없는 힘겨운 일들까지 더해 자꾸만 너를 흔들어대면서, 끝내는 점차 네 자리가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지. 만약, 이대로 야구를 멈추게 된다면 넌 어떨까?

어떻긴 뭘 어때. 아마 넌 제법 괜찮을 거야.

조금 억울하거나 아쉬움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후련함도 있겠지. 마치 오래도록 널 옥죄던 족쇄가 풀린 것처럼 말이야. 자유로움. 그리고 곧 다른 것을 찾아, 열심히 또 신나게 해 나가겠지.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야구만큼은 잘할 거야.

전부터 꿈꿔왔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 혼자서 여행이나 캠핑을 떠나고, 패러글라이딩이나 홈파티처럼 여태껏 못해본 것들도 하나씩 해보면서 넌 꽤 재미난 삶을 살아갈 거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랑스런 사람들과 함께 있겠지.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면, 야구를 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건 야구로 원하는 것을 이뤄내지 못할까 전전긍긍 앓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 누구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밸런스와 스케줄을 아는 것. 모든 것에 대한 신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깊이 빠지지 않는 것. 순리대로 당연하듯 하게 되는 좋은 습관들을 이어가는 것. 루틴. 집중은 하는데, 그냥 재밌게 하는 것. 야구 외적 순간에 야구를 제외하는 것.

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리고. 너는 그저 날갯짓을 준비하듯 편안히 어깨를 늘어뜨리다가, 너의 때가 됐을 때 신나게 푸르른 그라운드 위를 날아오르면 그뿐인 거지.



하늘은 높고, 너에겐 커다란 날개가 있지.



어때. 뭔가 와닿지 않아? 그랬을 거야. 그래야만 해. 이건 딱 2년 반 전에 네가 나에게 들려줬던 네 이야기니까. 니가 찾은 너였으니까.


그때의 너가 지금의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한 가지는 꼭 명심했으면 해. 너를 위한 시간들을 더 치열하게, 간곡하게 지켜내길 바라. 그러하므로 야구를 안 할 수 있기를 바라.


니가 좋아하던 그 카페의 전망, 수고롭지만 떠나보는 짧은 캠핑, 침대에 누워보는 영화 그리고 드라마, 마음을 기대듯 서로를 기울이는 술잔, 편의점 앞에서의 간단한 캔커피, 분위기 좋은 곳에서의 독서, 신나는 콘서트와 재미난 공연, 일기와 글쓰기, 운전, 외국어, 요리, 쇼핑, 나같은 건 생각도 못할 각종 흥밋거리들. 그리고 언제나 내가 가장 적극 추천하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까지.


그게 무엇이건 네가 원하는 것들은 너의 삶을 더욱 너답게 채워줄 거야. 네가 말했다시피, 너에게는 야구를 하는 것만큼 야구를 안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 어쩌면, 야구를 안 할 수 있어야 진짜 네 야구가 무엇인지 보게 될지도 몰라.


그랬을 때 넌, 네 최고의 야구를 선보이며 나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다시 예전처럼 야구가 즐겁다 하겠지. 그러니 이것도 잊지 마. 넌 이미 내가 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야.







요즘 자꾸 찾아오는 불안함이란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한 번 살펴보자구.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무던히 바라보다 보면, 생각보다 측은할 지도 몰라.

그때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하고 토닥토닥도 좀 해주자고.

그럼 어느 순간 녀석이 수줍게 말할 거야. 이제 슬슬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좀 해볼까? 라고.

더 궁금하지 않아도 우리 연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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