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봄_유령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어쩌면, 캠프가 주는 마지막 선물.

by Juco


절박함. 벼랑 끝. 간절함. 꼭. 반드시. 생존. 죽어도. 결과. 낭떠러지. 경쟁. 기필코. 마지막 기회. 올인.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캠프의 유령이라고 불렀던 이 모든 것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의 자세이자, 언제나 곁에 두어야 할 덕목일까? 아니면, 오로지 그래야 한다고 또 그렇게 하겠다고 여긴 스스로의 선택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어린 제니퍼가 기자에게 요구받았던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집요하게 요구당하고 있는 걸까?




어때? 넌 어떤 생각이 드니?




오늘은 언젠가 네가 들려주고, 보여줬던 이야기를 하나 나눠볼까 해. 아마 재미있을 거야. 다름 아닌, 우리들 이야기니까.



한창 시즌을 앞두고 담금질에 빠져 있을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이야기는 이랬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또 어느 때보다 많은 주변으로부터의 들뜬 기대(하다못해 너 자신에게까지도)를 받으며 열렬히 준비했기에 이제는 말 그대로 그라운드에서 너를 보여주는 것만이 남은 상태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첫 무대가 조금 전 이렇다 할 겨를도 없이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분명히 그라운드에 오르기 직전까지 아무 문제없었으나,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너는 이미 망했음을 직감했다. 지금껏 연습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르게,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플레이를 펼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떻게 경기를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으며, 결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정 또한 이제까지의 노력이 온데간데 없이 무기력했다. 무대에서 내려와 스스로에게 실망했음은 물론, 모두가 내가 나를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 도무지 몸 둘 곳을 몰랐다.

시합을 치르기 전 어땠냐는 질문에 너는 '몇 개월 만의 시합이라 다소 긴장이 되긴 했죠. 또 주변에서 기대하는 게 느껴지니까 거기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그런데 원래 시합에서도 이 정도 긴장은 하니까. 다른 시합과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 후로 한참을 그 무대에서와, 또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 천천히, 그리고 먹먹히 나눴다.

주로 힘들다, 걱정된다, 두렵다, 답답하다, 실망스럽다와 같은 말로 함축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며칠 뒤에 있을 다음 시합조차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오늘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너에게 이미 다음 시합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무대이기보다, 걱정과 우려가 난무하는 두려움이 되어 있었다.

어, 이거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인데요?

너는 대화 도중 문득,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눈치 보며 힘겹게 애쓰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갔음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너는 진짜 네가 원하는 '너'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언제부턴가 너는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즐거워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대에 보답하고 싶어서, 나를 보여주고 싶어서,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정말 잘하고 싶어서, 그게 너무나 간절했기에 즐기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파렴치한 마음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장엄해진 무대에 진짜 '너'는 설 곳이 없었다.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서 너는 정작 네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그게 가장 속상했다. 너는 그렇게 말했다.

다음 날 너는 바로 락커로 향했다. 원래 늘 무언가 적혀 있던 곳이지만, 정신없이 달려 나가기만 하다 보니 지금은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주변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너에겐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한쪽 귀퉁이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넌 다시 그곳에 뭔가를 끄적였다. 그리고 며칠 뒤, 내 핸드폰에는 이런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계속 웃으면서 시합했습니다. 정말 놀라웠어요.



너는 여전히 간절하고, 절박하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단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적어도 무대에 올라서는 뭔가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게 '진짜 너'가 하는 너만의 야구일 테지.


오늘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곧 또다시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 올 거고, 이때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주장컨데, 캠프의 유령은 아니야. 봄은 진짜 너로 돌아갈 시간이야. 과연 '진짜 너'가 달콤할지, 매콤할지, 혹은 또 다른 어떤 맛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아주 맛있을 거야. 네 입맛에 가장 딱 들어맞을 테니까. 그게 뭐냐고?


왜 있잖아, 니가 꼭꼭 숨겨놓은 진짜 '너' 말이야.



그래, 이런 거.







무대 위에서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어떤 자세와 어떤 마음으로 플레이하길 원하는가.

말, 글, 그림, 음악, 몸짓, 향기 그 어떤 것으로든 내가 바라는 '진짜 나'를 가장 생생하게 담아.

무대 위 그곳에서, 내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전환하여.

내가 필요할 때, '진짜 나'를 꺼내 쓸 수 있는지 연결해 보고, 연결해 보고 또 연결해 보기. 연결하면 할수록 우리의 시냅스는 빠르고 강렬하게 작용하니까.

더 궁금한 것은 우리 연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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