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루틴이 되어 다시 너를 춤추게 할 때까지.
오는 주말, 우리의 개막. 어때? 캠프에서 돌아와 연습경기를 치를 때마다, 그 시작이 기다려졌을지 혹은 초조하거나 촉박하게 느껴졌을지.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우리의 상태일랑 아랑곳없이 시즌은 제멋대로 때만 되면 시작해 버리니까. 맞춰야 하는 건 이쪽. 일전에 사무치도록 부끄러운 내 기도문을 대뜸 너에게 알린 까닭이 뭐겠어. 때가 됐으니, 우리 제대로 놀 준비를 하자는 거지.
먼저 내 부끄러움의 기도문을 수습은 해야 하기에 내 이야기로부터 시작은 하는데, 핵심은 아니니 간단토록 애써볼게.
어떤 날은 너와의 코칭으로 한없이 기뻤지만, 또 어느 날은 정반대였어. 비참하기 그지없었지. 뭔가가 필요했어. 그래서 나는 지난 내가 남긴 흔적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찾았지. 처음에는 대단한 걸 찾은 듯했지만, 사실 곱씹을수록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 그저 내가 사라지는 것. 수천 번, 수만 번을 되뇌었던 내 신념이자 철학이었음에도 너무 익숙해서인지 혹은 그것이 거만해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내가 버젓이 살아 숨 쉬는 채로, 너와 코칭을 나눴으니 그게 어찌 온전히 너를 위한 시간이었을까.
그렇게 내가 남긴 흔적들을 하나, 둘 살피다 재밌는 점을 몇 가지 찾았는데. 하나는 코칭 시작 전, 내 전략과 기술에 몰두하면 할수록 그 코칭은 형편없어졌다는 것. 또 하나는 결과가 좋았던 코칭에선 코칭 내내, 내가 나의 신념을 붙들고 놓치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신념을 까맣게 잊었음에도 내가 나도 모르게 신념을 발휘하며 코칭을 성공적으로 마친 적이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은 내가 바쁘게, 급하게, 그러니 정신없게 코칭에 임했던 때였다는 것.
짧게 정리하자면, '내가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을 놓을수록 내 신념의 발동확률은 높았고, 내 신념이 코칭에서 잘 발동되었을 때 그 결과가 가장 좋았다.'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정신 놓고 코칭에 들어설 수도 없는 노릇에, 또 그런 행운을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내 신념을 지켜내야 했어. 신념을 가진 나는 적어도 코칭에 있어서 내가 늘 만족할 수 있는 모습일 테니까.
나는 내가 시도해 본 그러할 수 있는 여러 방식들 중, 기도문을 선택했지. 특별한 이유는 없어. 단지, 나에게 쌓인 수많은 시도의 흔적들 가운데 기도의 방식이 가장 맘에 들었을 뿐이니까. 나는 앞으로 너를 비롯한 누구가 됐든, 그와의 코칭을 앞두고는 기도문의 흔적을 따라 밟겠지. 물론 언젠가 이 흔적도 달라질 순 있겠지만.
미안해. 애썼지만 길었네. 이해 부탁해. 원체, 내가 말이 많아.
자, 이제는 네 이야기를 나눠볼까? 본 글의 핵심이자, 얼마 전 네가 들려준 너의 흔적에 관한 아주 귀하고 귀한 이야기지.
다시 도전하는 너에게 있어, 며칠 전 연습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출발이었을지 몰랐다. 경기는 아니었지만, 경기와 가장 흡사한 상황을 세팅하고 치러지는 연습이었기에 너와 내가 가장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두려움'이란 숙제를 풀어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연습을 마치고 너는 이렇게 말했다.
연습해 온 것처럼 특별한 생각 없이 잘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오자, 저도 모르게 움찔했고 제가 움찔했다는 걸 알아차렸죠. 그리고 그냥 마주하자. 맞닥뜨리자. 직시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사실 얼마 전부터 떠오른 생각들이었는데, 맞아요. 예전에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함으로 그런 마음이 되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달까?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저한테는 완전 다른 느낌이에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물론이야. 둘은 아주 다르지. 맛집으로 소문난 곳보다, 내 단골집이 더 맛난 것처럼.'
너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움찔했을 때, 제가 했던 게 있어요. 그냥 더 강하게! 몸쪽으로 더! 자신있게! 라는 말을 떠올린 건데요. 이건 제가 저에게 해주는 말이었어요. 맞닥뜨리자고 생각한 이후부터 특히 자기 전에 자주 떠올린 이미지가 있는데, 제가 두려워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그 상황에 놓인 저를 또 다른 제가 보고 있는 거죠. 두려움에 빠진 저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그때, 또 다른 제가 저에게 다가가 말해주는 거예요. '괜찮아, 그냥 맞닥뜨려. 더 강하게! 몸쪽으로 더! 자신있게 던져!' 이 말을 들은 저는 다시 저답게, 제가 던졌던 공들을 제대로 뿌리는 거죠. 이런 이미지를 자주 그려본 덕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이번 연습에서 움찔했을 때, 똑같이 이 말을 떠올리고 제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게 말이죠.
너는 생각보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네가 찾아낸 너의 흔적을 나에게 꺼내 놓았다. 너의 흔적은 역시나 환상적이었다. 나는 너에게 숙제를 주었고, 이제 기다린다. 네가 보여준 이 환상적인 흔적을 과연 너는 뭐라고 부를까.
너는 아주 선명하고도 진한 너의 흔적을 하나 찾아냈지. 더구나 출발선에 선 지금의 우리에게 나는 너무도 적합한 흔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라운드에서 네가 갖추고자 하는 신념이자, 진짜 너의 모습에 대한 흔적을 네가 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또 의도한다면 너는 충분히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리라 확신해.
마치 내가 코칭 전에 짧은 기도문을 통하여, 내가 발휘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플레이를 다시금 새겨놓는 것처럼 말이야. 참, 나는 이걸 '내가 사라지는 시간'이라고 불러.
자, 이제 오늘의 마지막으로 질문.
나는 늘 내 무대에 오르기 전, 내가 사라지는 시간을 갖지.
너는 네 무대에 오르기 전, 늘 무엇을 가져가지?
이젠 네가 보여줄 차례야.
맞아, 루틴이야. 흔히들 그렇게도 부르지. 그럼에도 굳이 내가 '흔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알다시피 '루틴'이라는 표현에는 불편함과 거부감을 갖는 너도 있기 때문이야. 나는 너와 굳이 루틴의 정의나 이해 따위를 두고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 중요한 건, 오직 너에게 얼마나 이로울 수 있느냐, 그뿐이니까.
만약 네가 싫다면 루틴 같은 건, 쓰레기통에 던져도 좋아.
다만, 네가 가장 신나고 빛났던 무대에서 너는 어떤 상태였고, 무엇을 했는지 네가 남겨놓은 그 흔적들을 찾길 바라. 분명, 심히 환상적일 거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야.
해서, 나는 네가 꼭 다시 찾아내주길 바라. 그리고 그라운드에 오르기 전, 아무도 모르게 뒷주머니에 살짝 챙기는 거지. 네 맘에 드는 가장 멋진 너만의 흔적으로다가.
이상 나머지는 우리 또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