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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Aug 08. 2024

'나의 차은우들'아, 먹고 운동하자.

경각심을 갖기 위해 6개월마다 병원에 갑니다.

‘아주대학교 건강클리닉 검진’ 일입니다. 6개월에 한 번, 휴대폰에 일정이 뜬다. 아이들이 등교 전 오늘의 일정을 일러둔다. “선생님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 점심 먹고 바로 집으로 와.” 


처음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는 가을이가 급작스럽게 살이 많이 찐 상태였다. 성 조숙증이 의심 됐다. 형이 검진을 받으러 가는 김에 동생 단풍이도 함께 동행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저체중. 영유아 검진을 할 때마다 3% 안에 들어서 소아과에서 대학병원 검진을 권유했다. 


남자아이들은 가슴과 손바닥 엑스레이 사진으로 뼈 상태를 확인한다. 피검사로 성조숙증의 유무를 확인하고 진료 시 고환의 상태를 확인한다. 가을이는 성조숙증은 아니었지만 뼈 나이가 또래에 비해 2년이 빠르다. 원인은 비만. 단풍이는 그에 비해 1년이 느리다.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 같은 환경, 같은 음식을 먹지만 두 아이의 검사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 녀석은 비만, 또 한 녀석은 저 체중. 누구에게 식단을 맞춰야 할까? 선생님은 저체중 아이에게 식단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일단 살이 찌지 않으면 키가 안 커요.” 요즘 초등학생들의 평균키는 예전에 비해 크다는데 우리 집 아이들의 예상키는 너무나 소박해서 나를 좌절케 했다. 차은우 사진을 보여주며 “너희들 이렇게 커야 된다.”라고 자주 말하던 나의 소망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운동과 식단관리. 나의 차은우들을 위해 나에게 막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렇게 6개월에 한 번 나의 관리능력을 평가받듯 병원에 가야 했다. 가을이의 체중이 0.2Kg 만 줄어도 칭찬을 받았다. 잘하고 있다고, 고생했다는 말은 나를 위한 위로였다. 그에 반해 체중이 늘면 미래에 일어날 안 좋은 상황들을 선고받아야 했다. 그 말은 “이렇게 신경 안 쓰시면 큰일 나요, 노력하세요.”라는 말로 통역되곤 했다. 단풍이는 애를 써서 어떻게든 먹여야 했다. “너 그렇게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늦게 자면 키 안 커, 나중에 엄마 탓 하지 마” 먹이고 재우기 위해서 협박은 예삿일이 되었다.


이번 검진 일에는 좌불안석이었다. 가을이의 체중은 4Kg나 늘어나 있었고 단풍이의 체중은 요지부동. 아이들의 체중과 키가 나의 성적표 같았다. 먹는 것 자는 것에 유난을 떨어도 나아지지 않는 결과는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하는 내 탓인 것만 같다. 주위에 키가 쭉쭉 크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저 아이들은 뭘 먹여서 저렇게 크는 걸까. 병원에 갈 때면 유난히 나는 작아졌다.


조퇴한 아이들과 아주대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순서를 기다린다. 병원에 많은 아이들은 보고 있으면 겸손해진다. 대학병원인지라 더 마른 애들, 조금 더 통통한 아이들을 많이 본다. 고생하고 있을 아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그 모습에 위안받는 내가 싫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게 위로가 되는 현실이 내 그릇의 크기를 쪼그라들게 한다.


긴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선다. 오늘은 또 어떤 선고를 받게 될까? 혼 날 준비를 어느 정도하고 왔지만 가벼운 형량이 떨어지길 기대해 본다. “가을이는 20cm 남았네요. 그것보다 체중관리 안되면 중학교 가서는 인슐린 맞아야 될 수도 있어요. 6개월 뒤에 금식하고 와서 당뇨 검사받아보죠.” 탕 탕 탕. 어떠한 구형보다 무겁다. 내 키가 1cm는 작아진 것 만 같다.


단풍이의 차례. “음, 잘 커봤자 170cm 미만이에요. 주사를 맞을 정도는 아이고 30분 이상 씩 운동시키고 양질의 식사를 하도록 하죠. 6개월 뒤에 봬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진료실을 나온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이 생겼을 때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쓴다. 자책과 미련만이 남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이제 방학이니 여유 있게 아이들과 운동을 해보자. 힘들겠지만 단풍이는 소량씩 자주 먹이도록 하자. 가을이는 인스턴트, 탄산, 짜고 단 음식들을 조금 더 줄이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온다.


“딱히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먼 데까지 병원에 가는 이유가 있어?”

주기적인 검진을 다니면 주위에서 묻는다. 처음엔 나도 내 마음을 몰랐으나 지금은 안다.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다.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 병원에 다녀오면 내 마음가짐은 환기된다. 의사 선생님의 구형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해이해진 마음에 약 처방을 하는 거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인슐린 맞아야 한대, 체중 안 늘어서 키 안 크면 어쩔 거니’


내 마음을 다 잡고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주지 시킨다.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기에 심각성을 깨닫고 싫어도 해야 함을 인지한다. “우리 방학 동안에 하루에 줄넘기 2천 개씩 뛰자.” “응 알았어, 줄넘기 뛸 때 유튜브 봐도 되지?”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그 안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쿨 하게 허락한다. 돌아오는 길 우리들의 의지는 불타오른다.


병원에 다녀오면 한 동안 우리 집은 선수촌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타오르던 마음은 점점 닳아 없어진다. 방학이 끝나면 제 할 일은 끝나다는 듯 유유히 종적을 감춘다. 그런 녀석을 병원 가기 한 달 전에 겨우 끌어내 우리 앞에 모셔다 놓고 귀인대접을 한다. 녀석은 우리를 쳐다보며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보시던지’하는 눈빛으로 우릴 지켜본다. 조임과 느슨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부단히 애쓰는 우리가 가엾다는 듯이.


6개월 뒤 휴대폰에선 또다시 일정 알람이 울릴 것이다. 우리는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이기며 병원으로 향하겠지.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선생님의 말을 듣기 위해. 진료 후에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일깨우고 건강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직시한다. 그 이유만으로도 휴대폰에 일정을 예약해야 할 근거가 된다. 


아이들은 오늘도 유튜브를 보며 줄넘기를 넘고 나는 건강한 식단을 검색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나에게도 아이들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오길 소망해 본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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