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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an 27. 2024

우린 사랑 아니래도 사랑일 테지

너와 함께라면 별것 아닌 일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갑작스레 내린 눈발에 패딩 모자를 뒤집어쓴 채 까르르 웃던 일. 찜질방 옷을 입고서 뒤춤에 계란을 숨긴 뒤 어느 손에 쥐였는가를 알아맞히는 일. (근데 결국엔 두 손 다 아무것도 없던 일.) 식빵을 사갈 힘도 없어 커피와 같이 배달을 시켰는데 커피는 쏙 빼놓고 덩그러니 식빵만 온 일. 얼른 가게로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하시는 사장님의 음성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던 일. 사소한 질투가 귀여워 씩씩 열 내는 얼굴에 대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던 일. 잘 쌓인 눈을 굴려가며 눈사람을 만든 일. 지하철 입구에서 아쉬워하며 손을 흔드는 일. 한껏 내려앉은 눈꼬리가 ‘똥강아지 같다’ 매번 생각하는 일. 나이에 맞지 않게 서로 어려지는 일. 출퇴근길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면서도 통화를 끊지 않고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일. 짜증 나거나 속상했던 일화도 네게 털어놓으면 다 시답잖은 순간에 불과해지는 일.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툭하면 끼니를 거르고 약을 달고 살던 내가, 이제는 꼬박꼬박 밥도 잘 먹고 약을 줄여가는 일. 베갯잇을 적시는 일이 드물어지는 일. 좋아한다는 말에 내가 더 좋아한다며 옥신각신하는 일. 어느 날은 다신 안 볼 듯 미워지다가도 어느 날은 네가 좋아 영혼을 견딜 수 없을 듯하다. 동그란 눈 코 입. 오늘도 내 옆에 찰싹 붙어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네가 특별하다. 우린 사랑 아니래도 사랑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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