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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an 27. 2024

너의 우울이 길다

널 사랑하여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초반과 다른 모습에 실망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사랑이라고 감히 여겼다. 항상 열정에 넘치던 너는 이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여 온종일 잠을 잔다. 커튼 뒤에 숨고 이불을 이마 끝까지 덮어 저만의 굴을 만든다. 내가 손 뻗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한다.


사랑을 하면 달라지는 점이 수두룩했다. 그중 난 좋은 점만 속속들이 주워 먹었다. 이따금 너의 눈을 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녔다. 현재의 지친 푸석한 얼굴을 가만 매만져보고 있노라면 지난날의 내가 발각되는듯하여 부끄러워졌다. 동경과 존경을 넘어선 시간이 있었더란다. 이만 네가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등 뒤에 서서 길쭉한 팔을 잡아당긴다. 채찍질이라 하면 정 없고 재촉이라 하기엔 강요가 되는 것 같다. 구사할 수 없는 마음으로 너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능력이 허용되지 않은 범주인듯했다.


부스스한 네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다. 옷을 골라 입히고 겨드랑이 사이 팔을 끼워 넣어 일으켜 세운다. 실제 이러지 않았다 한들 영혼끼리의 시뮬레이션이라면 가능케 된다. 나는 네가 우울에 빠져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의 무너짐을 아프지 않은 심정으로 부릅뜬 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떤 때에는 나의 사랑이 네게 무력하다 여겨진다. 무기력한 행색을 살필 적마다 더 이상 너한테 내 사랑이 힘이 되지 않는구나, 맥이 빠진다.


네가 얼른 짙은 그림자를 떨쳐내고 나왔으면 한다. 손을 잡고 발을 내디뎠으면 한다. 인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처럼 위태롭다 하여도 무관한다. 내가 잡아주면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어쩌면 난 널 위해 튼튼한 두 팔과 다리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받들 준비를 한다. 쓰러져도 그게 내 품이기를 기꺼이 자처한다. 도움이 될 만한 면들을 가져와 하나둘씩 해결한다. 이렇게 둘이라면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단 얘기를 전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일 때 가장 강한 인간이 된다. 우리는 우리로 단단해진다.


미열을 앓는 이마 위로 손을 얹고 물수건을 얹고 정갈한 마음을 얹는다. 네가 가진 아픔 상처 전부 빠짐없이 나눠 짊어지고자 한다. 너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싫고 때로는 너무 작은 것들에게도 상처를 입는 네가 싫다. 그리고 제일 싫은 건 가끔씩 네게 상처를 입히는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네가 상처 그득한 눈으로 나를 마주할 때면 나 스스로가 그리도 형편없어질 수가 없다. 해선 안되는 일을 저지른 꼬마 같고 누군가 애지중지하던 잔을 실수로 넘어뜨려 기어코 깨뜨린 장본인 같다.


내가 한창 눈물이 잦아지던 시기에 네가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울면 지치니까. 네가 나한테 지칠까 봐…. 나는 왜 너만 보면 눈물이 터져버렸을까? 참지 못하고서 엉엉 우는 내 뺨에 제 뺨을 맞대는 너를 더욱 세게 안았다. 생각해 보면 넌 나의 볼품없는 과거를 함께 극복해 주었다. 한데 그러면서도 너의 우울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나는 심사가 뒤틀린 사람스럽기도 하다. 나의 모든 면들을 사랑한다는 너에 반해 우물쭈물하는 나는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대단한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보다 누군가를 대단하게 보는 시선이 중요한 것이다. 시선 따라 마음의 바탕이 달라진다. 너를 대단한 눈으로 보려 한다. 네가 짓는 표정과 행하는 마음. 너의 우울과 기쁨. 일기장에 칠해진 먹구름과 밝은 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이해받고자 하는 면모. 네가 적는 모든 문장들. 헤아린다는 건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한다는 것. 유심히 살핀다는 것.


나는 너한테 본인 상태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고 싶다. 즐거이 함께 내리는 비를 맞거나 너의 우울을 있는 힘껏 걷어주고 싶다. 가히 사랑으로 일으킬 수 없는 건 없다고 속삭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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