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벌써 내가 모르는 얼굴이 되어버렸을 것 같아요

by 주또

열 손가락이 허전해요. 매일 깍지 껴잡던 이의 부재로 인한 것일 테지요. 이제 적응해야 하는데 어지간히를 넘어서 오래된 빈집 같네요.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 집은 벌레가 모이고 찬기만 가득한 거 알지요. 내가 그렇단 건 아니다만 그냥 비유가 그래요. 나도 나름 잘 지내고 있어요. 나쁘지 않아요. 혼자 이렇게 지내는 거요. 퇴근 후에도 나만의 시간이 있고요. 미뤄뒀던 계획들을 차츰 하나씩 해나아가요. 친구들도 종종 만나고요.


당신은 어떤가요. 겪어보니 이별, 별것 아니지요.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요, 내가. 지금쯤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으려나요. 밤마다 모임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려나요. 바쁘게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으려나요. 벌써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건 아니려나요.


툭하면 자주 눈물을 흘리는 내가 지겨웠을 거잖아요. 이젠 닦아줄 일도, 달래줄 일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을 들어주고 있지 않아도 되니 한결 편해졌겠어요. 쓸데없는 나의 걱정과 불안들을 맞장구치거나 잠재워주지 않아도 되어 훨씬 덜 피로하겠어요. 오히려 잘 된 일인 듯하군요. 괜히 볼멘소리를 해보아요.


난 지나고 보면 기억이 미화된다는 말마따나 당신이 나한테 잘해준 순간들만 수두룩 빽빽한데요. 자꾸만 다정한 얼굴이 눈앞에 잔상처럼 남아 일렁이는 게, 흠씬 콧속을 저릿하게 만드는데요.


어제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거든요. 원래 당신 만나기 전엔 곧잘 그랬잖아요. 한데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어요. 다들 웃는 장면에서 울었고요. 다들 울고 있는 장면에서는 더 크게 울어버리는 바람에 엄청난 민폐였어요. 오죽하면 옆에 있던 분께서 당황하신 모양인지 영수증이라도 건네신 거 있지요(웃음).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넘어진 탓에 무릎도 까진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었는데 말이에요. 내가 걸을 때마다 조금이라도 들뜬듯싶으면 팔짱을 끼거나 잡아주고 그랬잖아요. 막상 또 혼자 있을 때 넘어지니 그 생각이 더욱 짙더라고요. 만약 당신이 곁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식의 지질한 생각이요.


고개를 들 경우, 저만치서 당신이 걸어와 못 말린다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줄 것도 같았지요. 왠지 당신은 벌써 내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을 듯하기도 했지만요. 그럼에도 나타나주기를, 영화 속 주인공인 양 등장해 주기를, 내심 속으로 외웠어요.


보고 싶어서요.


내가 당신을 놓친 건가. 그래서는 안되었던 건가. 살아오며 빈번히 놓아야 할 것과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분간해 내지 못해 괴로웠는데.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루에도 수억 번 머릿속이 엎치락뒤치락해요. 정작 괜찮을 거라고 한 사람은 나였잖아요.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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