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진 않았어요. 그다지 기분 나쁜 이별이 아니었으니까요. 우리가 사랑한 시간이 사라지진 않고 남아있을 듯했어요. 전해주고자 한 편지가 있었으나 서랍에 넣어두고서 관뒀어요. 편지를 꽤나 길게 썼거든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내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녔거든요. 근데 전해주지 않았다니. 나도 이럴 땐 날 참 모르겠어요.
곧 서른인데 아직도 신발 끈을 못 묶어요. 걸려서 넘어질 뻔한 적이 수두룩하잖아요. 아마 한 달에 열 손가락 다 접고도 모자랄걸요. 때마다 당신이 쭈구려앉아 대신 묶어주던 모습이 선해요. 친구가 전에 그랬어요. 신발 끈이 풀리는 건, 누가 나를 생각하고 있어서라고. 난 여전히 신발 끈이 여러 번 풀리고 제아무리 리본을 만들어보아도 금방 도로 풀리는데요. 방금의 팽팽함이 속임수였다는 듯 말이죠.
친구의 말도 말이지만. 그러니까 누가 나를 생각한다는 거요. 그보다 당신이 무릎을 굽히던 순간이 또렷해요. 동그란 머리통과 정수리. 어쩌면 거짓말인 것도 같아요. 친구가 거짓 정보를 흘린듯하다고요. 왜냐, 당신이 나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분명 이다지도 먹먹할 리 없을 거거든요.
여름이 오면 우리 손에 땀이 흥건함에도 맞잡고 온 거리를 쏘다녔는데. 나는 내가 태어난 계절인 여름이 무진장 싫었지만 당신을 사랑한 계절이 여름이었단 이유 하나만으로 조금은 너그러워지기도 했지요. 다시 초여름이 오고 있고요. 올여름은 길게 이어진다고 해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그리워하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보고 싶어 해요. 종일 생각해요. 다시 여름이 오면 우리 손잡을 수 있을까요?
이 말도 전하지 못하겠지요.